한국일보

분열의 말로

2015-04-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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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17세기 초 중국은 명과 청의 패권 싸움으로 격랑에 휩쓸렸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조선은 ‘명과 청’ 두 나라 중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이때 조선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명을 선택했다. 그 결과로 일어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선택을 앞두고 조선의 조정은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분열되고, 관리들은 치열한 당파 싸움에 국력은 쇠잔할 때로 쇠잔해지고, 조선의 조정은 앞을 대비할 준비를 상실하고 있었다.

명을 제거한 청은 조선을 두 차례나 쳐들어와(정묘호란, 병자호란) 조정을 사정없이 유린하고 나라를 초토화시켰다. 이때 조선은 청의 침략을 막아낼 힘도, 훈련된 지휘관, 전쟁을 할 줄 아는 군사조차 제대로 없었다. 오히려 백성들이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일어났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라는 청나라 손에 넘어가고 인조는 청의 사령관에게 큰 절을 하고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한국의 지식층에서 요즘 유행되는 연구과제 중 하나인 병자호란에 대한 비망록이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민족에게 분열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를 새삼 떠올리는 것은 최근 뉴욕한인회 선거를 둘러싸고 야기된 한인들의 분열상을 보면서 우려감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중국, 일본 3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실상은 5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안에서 싸우고, 분열하고 서로 물고 뜯는 일에 혈안이다. 문제는 이를 보며 수준이하라 비난하면서 손가락질하던 우리도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다. 병자호란의 수치와 아픔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한다면 어둡고 슬픈 역사의 반복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조선 27왕조의 치세 517년 동안 이룩한 찬란한 문화역사가 외세의 침략으로 종말을 고한 것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지도층의 분열이었다. 권력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벌어진 사색 당파싸움이 결국 임진왜란과 한일병합을 초래, 치욕적인 식민지 강점과 3.8선 분단의 씻을 수 없는 굴종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는 오늘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이자, 한민족의 가슴 아픈 DNA이다.

분쟁과 분열은 결국 파멸을 초래한다. 서로간에 이익은 하나도 없고 상처만 있을 뿐이다. 이번 한인회장 선거파행의 면면을 보면 한인들은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세계 최강국 미국 최대도시에 와서 살면서 의식수준은 60, 70년대 이민 올 때 그대로이다.

이번 분란의 핵심축인 한인회 민승기 회장이나 사태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역대회장단, 솔직히 어느 한쪽도 손들어 주고 싶은 마음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자괴감만 들 뿐이다. 선거파행의 책임을 지고 민승기 회장은 물러나야 한다며 탄핵하고 다시 선거체제로 돌입한 역대회장단이나 이를 불법이라고 완강히 버티고 있는 민승기 회장, 솔직히 말해서 양측 다 안쓰럽다. 한 지붕 두 가족 탄생이 불 보듯 뻔해 보이는 이번 사태는 지금껏 누구하나 양보, 타협 한번 시도해보지 않은 패거리문화의 전형이다.

선거파행의 전말은 급기야 얼마 전 퀸즈 트리뷴에 소개돼 타민족 보기도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오늘의 사태를 화합과 타협 중재로 해결할 리더가 한인사회에 없는 것이 요인이다. 이민초창기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다툼을 질책하며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가 살아있어 오늘의 추태를 지켜본다면 또 한 번 호통을 칠 일이다. “한인들이 미국까지 와서 타민족의 손가락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분열되는 커뮤니티는 미래가 없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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