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건 있는 사랑

2015-04-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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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윤<교육가/앤도버>

2004년 정월, 추운 겨울 한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문을 열고 보니 낯선 한국 남자가 다짜고짜 “교수님, 제 아들을 살려 주세요. 제 아들이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경찰에서 이 동네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놨는데 아무 치료도 거절하고 죽겠다고만 합니다. 그 애를 살려주세요. 제 아들을 살려 주시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은혜를 갚겠습니다.”시간 가는 줄 모르게 엮어진 그의 아들 진호의 눈물 젖은 사연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뉴저지 남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진호는 몸집이 남보다 배나 큰 축구 선수였다. 운동장에서나 교실에서나 늘 자기가 차별 대우를 받는다는 괴로움을 안고 살았으며 가까운 두엇 교우들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이메일로 전달하며 위로를 받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그의 이메일을 받은 한 친구(?)가 진호의 심적 상태가 폭행을 실행할 직전이라고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생겼다.


경찰은 진호의 집에 몰려와 진호를 붙들려 했으나 힘이 황소 같은 진호는 삼층 다락방 자기 방의 문을 잠그고 가구로 문을 막아 경찰에 저항했다. 그러나 수명의 경찰들이 급기야 진호의 문을 부수고 발버둥치는 진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큰 자루를 뒤집어씌운 후 3층 계단 아래로 끌어 내렸다.

이 과정에서 진호의 두 팔목은 부러지고 머리와 몸에 상처를 입었다. 구치소에서 며칠 있은 후 경찰은 진호를 주립 정신병원으로 또 다시 Summit Oaks Hospital로 옮겼다. 이때 진호의 아버지는 이 병원 근처에 활동 많이 하는 한국여자가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해 찾아 왔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나는 병원으로 진호를 만나러 갔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인데도 진호는 침실 한쪽 구석에서 이불을 무겁게 덮은 채 거대한 야생동물처럼 엎드려 있었다. 간호원이 일어나라 해도 눈을 뜨지 않고 육중한 몸을 옆으로 돌렸다. 나는 “네 부친이 나를 찾아와 너와 만나 달라 해서 왔다. 일어나 앉아라. 네 예기를 듣고 싶다. 그 애가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훑어보더니 “나를 죽게 놔둬요. 살기 싫어요”했다. 나는 “네가 정 죽겠다면 별수 없다. 너의 부모들이 큰 상처 입을 것이지만, 시간은 아픔을 아물게 하고 세상은 너 없이 계속 갈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에게 세상살이를 잘 해볼 기회를 끊어버리겠다니 그것은 불공평하다.

불행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그때를 참지 못하고 다 죽어버린다면 이 세상 인구는 반도 못될 것이다. 다들 그렇게 죽는다면 세상을 변화시킨 위대한 사람들, 예를 들어 링컨 대통령이나 처칠 수상 같은 이들도 모두 위대한 일을 하기 전에 죽어 없어져 버렸을 거야. 위대한 이들은 고통을 비약의 기회로 삼아서 크게 된다. 네 자신이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상태가 너의 참되고 오래가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봐. 이 일도 사라져 없어질 폭풍우에 불과하다. 참고 순종하며 기다리면 기적이 너를 찾아올 수 있어.”

이 만남으로부터 2년에 걸쳐 진호와 나는 그의 대학진학, 방과 후 직업, 교우와 가족관계 등에 걸쳐 계속 함께 일했다. 기쁨에 넘치게도, 진호는 럿거스 대학 공과 대학에 입학됐고, 파트타임 직장은 Short Hills의 Apple computer store에서 얻었다. 그는 명랑하고 재주 있는 청년이 되었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사건은, 이웃 일본인 변호사 스즈키의 소개로 뉴저지에서 가장 유력한 민권 변호사 해리스와 만나게 된 일이다. 뉴저지에서 두 번째로 큰 법률회사의 소송담당 수석 파트너인 해리스는 그의 승소를 통해 뉴저지 주정부의 법을 바꾸게 한 기록이 있는 왕년 스즈키의 상관이었다. 해리스는 스즈키 와 나와 여러 차례 만난 후, 자신이 진호의 소송 건을 맡아 여러 변호사와 더불어 일체 무보수로 일하겠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이런 소송은 10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스즈키와 나는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뉴저지 서북부 멀리 산골 아름다운 전원에 정착했다. 진호를 만난 후 10년 되는 작년 초, 스즈키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진호의 법률 건이 상당한 보상을 받고 해결된 것을 아는가 물었다. 몰랐었다. 스즈키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고 나 역시 그런 감정이 생겼다. 이런 반응은 내 새로운 의식구조가 용납하기 힘든 정서다. 우리의 선행이 조건부였던가? 과연 조건 없는 사랑이 가능한가?
다음의 명상을 할 때까지 여러 시간이 걸렸다.

그때 가졌던 환희의 순간들, 그 사랑은 자발적이고 일방적이고 조건이 없었다. 기쁘게 준 씨앗은 열매의 기약을 내걸지 않았다. 뿌린데서 그쳤다. 이제 그 씨앗은 죽어 거름이 되었고 열매는 새 주인에게 갔다. 이 열매에 대해 나는 아무런 권한이 없지 않은가? 한때 내가 가졌던 씨앗은 사랑의 기쁨이었다. 이것만이 영원한 나의 것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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