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스폭발 사고와 SNS 세상

2015-04-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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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훈(사회1팀 기자)

지난달 26일 맨하탄 이스트빌리지에서 발생한 가스폭발로 한인 식당 2곳이 입주해 있던 주상복합건물 3개동이 붕괴된 사건은 뉴욕시민들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안겨다 줬다.

당시 가스폭발 소식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간 붕괴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수십 대의 소방차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100여명의 경찰들과 소방관들은 마치 거미줄처럼 엮인 소방호스들을 이리저리 건너뛰며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없이 취재를 하던 중 문득 고개를 돌려 행인들을 바라보는 순간 아주 익숙한 광경을 접하게 됐다. 바로 수백 명의 행인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불이 치솟고 있는 사고현장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잠시 사방을 둘러보니 누구 하나 빠짐없이 스마트폰으로 불길이 솟은 빌딩을 찍으며 손바닥의 안의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흥미로운 듯 스마트폰의 앵글을 다양한 각도로 바꾸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자신이 찍은 영상의 옆 사람에게 보여주며 뿌듯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안타까운 눈으로 직접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눈에 띠지 않았다. 대부분의 행인들은 마치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꼭 영상으로 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촬영에 열중하는 듯 보였다. 다소 괴기스럽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발생 직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에는 ‘이스트 빌리지 화재현장’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끝없이 올라왔다. 이들 게시물들 가운데서는 화염이 사그라지지 않은 현장을 배경으로 여러 명의 여성들이 셀카봉을 이용해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과 ‘V’자를 그리며 미소 짓는 자신의 모습을 올린 사진들도 있었다. 이날 사건으로 건물 3동이 붕괴되고 2명이 숨졌으며 25명이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은 컴퓨터와 연결된 전화선 너머의 타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SNS 세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는 타인에게 나의 멋진 일상을 ‘보여주는’ 것과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에 최고의 가치가 부여된다.
SNS 세상에서는 화염에 불타는 빌딩을 목격하는 것이 흥미롭고 흔치않은 자랑거리가 되지만 현실에서는 막대한 재산피해와 피해자들의 신음소리만 존재한다. 이런 괴리감이 결국 우리의 공감 능력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있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스마트폰과 마우스를 놓고 옆 사람과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자.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깜빡거리는 화면 대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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