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활절이 주는 희망

2015-04-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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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아프리카 최남단의 곶을 예전에는 ‘폭풍의 곶(Cape of Tempest)이라고 불렀다. 바다가 너무 험난해서 수많은 배가 침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감한 포르투갈 선원들이 여러 번 도전하여 드디어 안전하게 이 지역을 통과 할 수 있는 해로를 발견했다. 그 후 이곳의 명칭을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라 부르게 되었다. 절망 속에서 찾아낸 희망이다.

중국인들이 ‘위기(危機)’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참으로 슬기로운 착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위험도 하나의 기회가 된다고 본 것이다. 앞날에 대한 강한 희망만큼 인간을 활기차게 만드는 것은 없다. 어깨가 처지고 만사 의욕을 잃은 사람은 그만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결여됐다는 증거다.

5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을 기리는 부활절이다. 예수는 절망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가시면류관을 쓰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십자가 위에서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그리고 사망한 후 다시 부활했다.
그리스도의 이런 영광은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고통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이를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신앙의 모체이다. 기독교인들이 기리는 부활절은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면 희망의 내일을 맞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석탄덩어리가 다이아몬드 결정으로 만들어지자면 산소공급이 차단된 상태에서 약4,000도의 열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쇠는 1,560도에서 녹는다. 그렇다면 석탄이 아름다운 투명의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고통은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험난한 세파에 우리의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힘차게 뛰던 열정이 멈추었다면 그리스도가 인류를 고통의 피로 맞바꾸어 구원의 영광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나름 겪고 있는 절망과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자유와 평화가 있고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고 인권이 보장돼 있는 나라, 미국에 와서 사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나머지 또 무엇을 염려할 필요가 있겠는가. 늘 감사하면서 자신의 일에 혼신을 다하며 기회를 찾는다면 얼마든지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성공은 기다리는 자의 몫이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고 열심히 준비해가는 자의 몫이다.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봄이다. 한 해는 봄으로부터, 하루는 아침으로부터 시작된다. 또 아침은 새벽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맞은 오늘 이 아침, 희망은 진주와 같이 영롱하게 빛을 발한다. 희망이 있는 한, 우리에게 매일 매일의 삶도 순조롭게 시작되고 잘 마감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가능성을 가지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든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는 것을 뜻한다. 희망이란 두 글자보다 더 멋진 단어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는 지속적인 힘이 결국 성공의 필수요건이라 하였다. 끊임없는 도전정신, 이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실패조차 성공으로 바꾸는 에너지다.

동트기 전에는 새벽녘이 가장 어둡다고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바로 그 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끝없는 동굴 속이 아니라 조금 지나면 다시 환해질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어느 위인은 말하기를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 삶이 치열하고 열정적일수록 삶의 꽃이 자아내는 향기는 짙다.”고 했다. 부활절이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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