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막장으로 치달은 뉴욕한인회장 선거.

2015-03-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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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6년 만에 행사할 수 있으리라 기대에 부풀었던 동포들의 주권 행사는 한낱 물거품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한인회장 경선은 정녕 요원한 것이었을까.

후보 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 축제 분위기로 이끌어가야 할 선거관리위원회는 전횡을 일삼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김민선 후보의 사전선거운동을 빌미 삼아 아예 후보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촉발시켰다. 선거시행세칙이 예시하고 있다시피 답은 경고 정도로 그쳤어야 마땅하다.

현 한인회장인 민승기 후보 진영의 선대본부장이 선관위를 찾아가 자료를 제출하며 김민선 후보의 사전선거운동을 강력히 항의하기에 이르자, 선관위는 공식선거운동 7시간을 앞두고 비밀투표에 부쳐 만장일치로 김민선 후보의 자격 박탈을 의결했다. 민승기 후보의 입김에 의하여 임명된 선관위원장과 위원들인 바에야 민 후보 진영에서 항의한 사안에 대하여 의결에 붙인다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더욱이 익명이 보장되는 비밀투표임에야. 민 후보 또한 사전선거운동이라는 불법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민 후보가 선관위원장과 베이사이드의 커피숍에서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선관위는 비밀 회동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민 후보의 공식선거운동 기간 전에 배너를 부착한 행위에 대해서만 경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 쪽에 대해서는 후보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결정을 내리고, 다른 한 쪽에 대해서는 가벼운 경고 정도에 그친다면 과연 공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 후보 또한 지난 한인회장 선거에서도 김 후보와 유사한 사전선거운동을 펼쳤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다. 민 회장이 연임에 저토록 연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못 궁금하다. 공중권 매각, 장기 리스, 한인회관 재건축 등의 유혹 외에 무엇이 있을까.

한편 선거철이면 나타나 한몫 챙기려는 선수(?)가 있다. 배후에서 조종하는 ‘검은 손’이 미주 한인사회를 더럽히고 있다. 미국에서 단체의 내부관계에 관한 사항에 대해 법원은 사법심사 대상이 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원칙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단체 내부의 징계결의에 대해서도 법원은 가능한 한 간섭하지 않고 단체의 규율에 맡기려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김 후보의 선관위 결정에 대한 불복소송에서 이를 뒤집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민승기호(號)의 2년이라는 제34대 뉴욕한인회의 앞날은 온통 잿빛이다. 민승기 현 회장은 설사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임기 내내 정통성을 의심받으면서 진땀 꽤나 흘리게 될 것이다. 좌충우돌, 총영사관 전직회장들과 부딪히고 깨지면서 동포들의 냉소와 비아냥에 시달릴 것이다. 작금에 뉴욕한인회와 선관위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죽이고 사는, 오늘을 위해 내일을 죽이고 사는 대다수의 한인들에게 좌절과 실망감만을 안겼다. 봉사정신으로 무장했다는 저들이 시정잡배가 아닌 바에야 어찌.

하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 차가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세상에는 어찌 나쁜 사람만 있으랴. 더 나쁜 사람, 덜 나쁜 사람, 아주 나쁜 사람, 기분 나쁘게 나쁜 사람, 사악하게 나쁜 사람 등이 어우러지고 헝클어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칡넝쿨처럼. 때론 엉킨 실타래처럼 그렇고 그렇게.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양호선,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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