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월의 약속

2015-03-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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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수필가)

기억할 게 많은 3월이 가고 있다. 3월1일은 항일 독립운동이 일어난 날이요, 10일은 위대한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옥고로 순국한 날이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32세의 젊은 나이에 여순 감옥에서 처형당한 날이다.

나는 많은 생을 죽었다 살아나도 유관순 열사처럼 장렬하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결혼식만은 3월 1일에 올렸다. 유관순 열사와 독립투사들을 마음속에 기리며 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피 흘리며 목숨 바쳤던 선조들의 희생으로 지켜진 후예임을 3월이면 더 뚜렷이 기억하게 된다. 그분들이 이만큼이나마 인간으로 살게 해줬음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몇 구절이 기억된다. 극과 극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 밤과 낮의 영역, 밝음과 어둠, 평화와 질서, 고요와 양심, 모험과 죄악, 순결한 영혼이 죽었다 살았다를 거듭하는 삶의 변형, 새로운 탄생. 인간이 생각해 낸 온갖 신과 악마는 모두 우리 내부에 있으며, 가능성으로서, 소망으로서, 대체물로서 존재한다.

이 과정 중에서 인간은 개구리나 도마뱀, 개미가 되거나 허리 윗부분은 인간이고, 그 아래는 물고기가 되는 수준에 머문다. 시를 짓거나 설교하기 위해 내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람마다 참된 천직은 하나,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찾는 것뿐이다.] 단순하고 심오한 표현들이어서 나라는 존재를 돌이켜보게 한다.

현 인류는 ‘한 인류에서 다른 인류로 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테크놀러지는 우리의 지식을 모든 새로운 차원의 상호적인 것이 되게 하고 모든 소통을 투명하게 한다. 하지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지적능력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통한 공동체의 영위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계문명이 발달해도 인간은 한없이 존중되어야 하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실존이다.

세계만방에 선포됐던 3·1독립선언서의 마지막 구절은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오인(吾人)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하라’다.

독립투사들이 죽어가면서도 부르짖었던 몸부림. 진짜 인간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신념과 의지, 용기와 실천으로 짐승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한 투쟁이었다. 3월이 가기 전에 나는 높은 분 앞에 서서 약속한다. 밝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질서 있는 세계로 향하는 곧은 선과 길을 찾아 가겠노라고. 내가 동물이 아님을, 인간임을, 신(神)의 자식임을 굳게 믿고 미래로 나아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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