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리가 필요하다

2015-03-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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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뉴욕에는 다리(Bridge)가 많다. 브루클린 브릿지, 조지 워싱턴 브릿지, 맨하탄 브릿지, 퀸즈보로 브릿지, 그 외 윌리엄스 버그, 베라자노 등 바람 불고 눈비가 몰아쳐도 언제나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다.

수십만 대의 차량이 그 위를 지나가게 온몸을 다해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뉴욕의 상징이랄 수 있는 브루클린 브릿지는 고딕 양식에 아치형 쌍둥이 교각, 하늘에서 내려온 커튼 처럼 줄줄이 내려진 와이어가 어찌나 멋진 지 수많은 영화, 소설, 그림의 소재가 되고 있다.


1870년 공사가 시작되어 13년만인 1883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맨하탄과 브루클린을 이어준다. 브루클린으로 전철을 타고 가서 맨하탄 방향을 보고 다리를 건너가는 워킹 코스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조지 워싱턴 브릿지는 뉴저지의 포트리와 뉴욕의 워싱턴 하이츠를 이어주는 다리로 허드슨 강을 가로질러 가는 지극히 남성적 기상이 넘치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두 개의 강철 타워가 하늘높이 솟아 로프 케이블 등 상당히 남성적이면서 우아함도 갖춘 다리로 2001년 9.11 당시 대형 성조기가 타워 위에 걸려 나부끼며 차량 운전자들에게 감명을 주었었다. 1927년 공사가 시작되어 대공황 시기를 지나 완공되었다.
베라자노 내로스 브릿지는 브루클린과 스태튼 아일랜드를 연결하며 1959년 공사를 시작하여 1964년 완공된 현수교다. 매년 11월초 열리는 뉴욕시 마라톤이 시작되는 다리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마라토너의 모습이 활기찬 뉴욕을 보여준다.
그리고 퀸즈 롱아일랜드와 맨하탄 미드타운을 잇는 퀸즈보로 브릿지는 9.11 당시 맨하탄 내 모든 공공교통이 마비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을 걸어와 이 다리를 건너 퀸즈로 넘어왔었다. 피난민처럼 지치고 패잔병처럼 축 처진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와서는 길바닥에 지쳐 쓰러지거나 물을 찾았다.

뉴욕에 오래 살다보니 다리마다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지만 내가 사는 동네인 아스토리아 지역의 로버트 케네디 메모리얼 브릿지를 이야기 해보자.맨하탄, 브롱스, 퀸즈를 잇는 이 다리 이름은 트라이보로 브릿지였으나 2008년 1월에 스피처 전 뉴욕주지사가 다리의 이름을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 이름을 따서 짓자고 제안, 뉴욕주 의회는 그해 6월 4일 그 제안을 통과시켰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미국의 민권운동에 큰 기여를 한 로버트 케네디는 흑인과 백인, 부자와 가난한 이들을 연결시키고자 애썼다.

이 다리가 개통됨으로써 맨하탄의 부촌과 퀸즈의 중산층, 브롱스의 빈민촌이 서로 교류하며 뉴욕이 골고루 잘 사는 도시가 되는 데 기여했다. 다리는 단순하게 보로만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동맥이 되어 새로운 발전의 전기가 되는 것이다.
뉴욕의 수많은 다리들이 서로 오가며 발전의 계기가 되는 것만큼 사람과 사람, 한인사회가 발전하는데도 다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멀고 먼 남남, 견원지간, 소 닭 보듯 무관심한 사이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다리가 필요하다. 서로 먼저 조금씩 다가가다 보면 어느새 중간지점에서 하나가 되는 다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어렵지, 과정은 의외로 힘들지 않다. 조금씩 물러서고 이해하는 관용이 필요하다.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다가서려 노력한다면 어느새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훌륭한 다리를 만들 수 있다. 그래야 막혔던 곳에 피가 돌고 윤활유를 친 것처럼 모든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지며 어려웠던 일들이 술술 풀려간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다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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