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설익은 민족주의

2015-03-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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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홍(목사/ 시인 )

최근 미 대사 마크 리퍼트를 덮친 김기종씨의 엉뚱한 행동을 보며 몇 가지 생각해 본다. 본인의 행동이 나라사랑에서 기인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인간은 크게 세 가지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먼저, 자기 사랑이다. 자기 사랑 속에서만 자기 가치가 일어나 인격과 윤리 그리고 철학이 형성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무절제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진심으로 자기중심이 아닌 인격체로 자기를 사랑해야만 된다.

두 번째, 이웃사랑 이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말을 바꾸면 한 지체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큰 계명,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할 일이란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다.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요건이기도 하다.


사회학자 마틴 부버는 이 관계를 ‘나와 너(Ich und Du)’로 요약하여 제 3인칭 인 ‘그것(It)’이 아닌 너로 표현 한다. 그 관계가 안 되면 인격관계가 아니고 물질화가 되거나 하나의 수단 즉 이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나라와 세계사랑 이다. 우리는 나라라고 하는 하나의 군집(群集) 속에 살고 있고 더 나아가 세계라는 한 지구촌에 몸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와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포악하고 아직 철이 없는 북한의 김정은이 지배하는 나라인 북한 까지도 증오의 대상이 될 때 적이 된다. 그러나 그를 사랑할 때 친구가 된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와 그의 나라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전제 속에 김기종 씨 사건을 보자.

그는 폭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 하려 했다. 폭력은 분노에서 발산하며 큰일을 할 수 없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를 대표하는 지도자 가운데 동시대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모슬렘을 대표하는 말콤 X다. 흑인의 분노를 ‘이는 이로 칼은 칼’로 대항해야 한다고 선동했고, 또 한 사람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그가 간디의 무저항 그리고 예수의 사랑으로 대처했다.

지금도 역사적으로 후자였던 루터 킹이 바른 길을 선택 했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미국을 보는 시각이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금도 보호하는 입장에서 작전권을 쥐고 있다.(한국이 요구했지만) 그것을 식민 사관으로 보면 안 된다.

생각해 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군사적으로 어림잡아 1/40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북한과 우리는 1:1, 중국이 20배, 러시아가 20배라 친다면 말이다. 6.25 전쟁 때 미군의 사상자는 5만이었다. 피의 대가로 남한을 되찾아 민주주의로 정착 시켰다. 패권 의식을 떠나 미국이 그런 나라를 그냥 던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의 아부가 아니어도...

그런 미국에 칼을 꽃은 김기종 씨는 위의 세 가지 사랑을 버리고 바로 허공에 칼을 휘둘러 댄 것이다. 그 행위는 종북이 아니어도 편향적인 독일의 히틀러나 일본의 아베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설익은 민족주의자의 행동 이었다. (그가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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