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수건 같은 만남

2015-03-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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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인생은 너와나의 만남이다. 매일매일 누군가를 만난다. 선연도 악연도 만난다. 그 속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숱한 만남의 연속이 바로 인생살이다.

만남은 참으로 중요하다. 만남으로 운명이 바뀐다. 행복과 불행도 결정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색채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잘 만나야 행복하다. 여성과 남성은 좋은 배필을 만나야 행복하다. 학생은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실력이 쑥쑥 자란다. 스승은 뛰어난 제자를 만나야 가르치는 보람을 느낀다. 국민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잘 산다. 지도자 또한 국민을 잘 만나야 훌륭한 인물이 된다. 우연이든 섭리든 만남은 인생을 좌우한다. 그만큼 삶에 있어서 만남은 아주 중요하다는 얘기다.


만남은 선택이다. 만남은 선택하고, 선택받는 과정에서 시작되고 무르익는다. 오늘의 삶은 과거에 접촉됐던 만남의 결과다. 미래는 오늘 접촉하고 있는 만남에 의해 그 결실을 맺게 된다. 좋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 나쁜 선택을 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선택은 씨앗과 같다. 당장은 어찌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하다는 의미다.

만남은 여러 종류가 있다. 물과 같은 만남은 귀한 만남이다. 언제나 갈증을 풀어주고 생명을 되살려 주니까. 감사하는 만남은 좋은 만남이다. 배려와 존중이 있으니까. 차의 향기 같은 만남은 은은하고 오래 간직되는 만남이다. 돌아서면 그리워지는 만남,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운 만남도 있다. 금방 잊고 마는 물거품 만남과 떠나거나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만남도 있다. 만남의 종류는 수로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정채봉 시인은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자신의 글에서 만남을 ‘생선, 꽃, 건전지, 지우개, 손수건’ 등에 비유했다.그 중 ‘생선 같은 만남’은 아주 나쁜 만남으로 꼽았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고 악취를 풍긴다는 이유다. 만나면 서로 좋지 않은 영양을 준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원한만 남기는 만남이다. 서로 상극의 인연을 말함이다.

‘꽃 같은 만남’은 조심해야 하는 만남이다. 꽃이 활짝 피면 좋아하다가 시들면 버리기 때문이다. 만나기만 하면 향기가 나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렇지만 금방 시드는 만남이란다. 꽃과 같은 사랑은 풋사랑이다. 꽃 같은 만남은 그저 스쳐가는 인연인 게다.

‘건전지 같은 만남’은 비천한 만남이다. 힘 있고 좋을 때만 갖고 있다. 힘이 다해 아무 쓸모 없을 때는 버리고 만다는 이유다. 돈과 인기가 있을 때는 달라붙고, 떨어지면 끝나는 만남이다. 야비하고 천박한 인연이라 하겠다.

‘지우개 같은 만남’은 안타까운 만남이다. 금방 만나고도 그 만남을 순식간에 지워버리기 때문이란다. 만남 자체를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은 인연을 말함이 아닐까 싶다.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이다. 손수건은 눈물이나 땀이 날 때 닦아주기 때문이란다. 슬플 땐 눈물을 닦아준다. 기쁠 땐 내 기쁨인양 축하해준다. 힘들 때는 땀도 닦아준다. 상처도, 때 묻은 손과 얼굴도 닦아준다. 언제나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만남을 일컫는 것이다. 이는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좋은 인연인 것이다.

우리네 인생은 하루하루가 만남의 연속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인생은 좋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인생을 살맛나게 살려면 ‘손수건 같은 만남’의 선연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인연은 기다린다고 그냥 다가오지 않는다. 자신이 먼저 다른 이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삶 속에서 ‘손수건 같은 만남’의 인연을 보다 많이 맺을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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