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2015-03-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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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애(시인)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에는 추억과 사랑이 있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다.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사람들의 사랑의 이야기에는 마음을 흔드는 색깔들이 묻어 있다. 사람들마다 갖가지 다른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세월이 가도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시대를 묶는 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철교로 강을 건너듯 영화를 보면서 40년 세월을 건너뛰어 1970년대로 돌아가 보았다.

그때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강을 건너고 기차를 타야만 했다. 공중전화로 동전을 넣어가며 신호음을 기다리고, 가슴 졸이며 못다 한 말을 편지로 썼다. 답장이 없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더 아름답고 안타까운 것은 가보지 못한 길을 노래한 프로스트의 시처럼 기억 속에서 그 길을 거듭 걷기 때문일 것이다. 도달할 수 없는 다리 저편이 있다는 것을 왜 그때는 알지 못했을까? 알았다면 그토록 무모하게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는 참새처럼 눈이 멀지는 않았을 것을.


사랑의 속성은 현실을 넘어서는 무모함에 있다는 것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피 흘리며 낯선 거리를 헤매던 사랑의 초년생 시절이 있었기에 수업료를 비싸게 치르면서도 실연의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실연의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해 인생의 다음 학교도 망쳐버리는 바보들도 있는 것이 삶이다. 바보들의 행진은 계속되고, 한강철교가 금문교로, 브루클린 브릿지로 이어지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든다. 만날 때 입었던 어떤 옷, 같이 들었던 어떤 노래, 같이 먹었던 어떤 케이크, 이런 하찮은 것들에도 빛을 발하는 마법의 빛 가루가 뿌려진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를 보냈다는 것도 특별한 인연이다. 슬픈 웨딩 케이크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이 갖는 어떤 특별한 공감, 그 공감이 편해서 사람들은 요즘 복고풍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사랑의 배경으로 깔리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다시 들어도 신선하다. ‘하얀 손수건’ ‘사랑하는 마음’ ‘가나다라마바사’ 모두 정답기만 하다.

전라도에 완도가 있다면 경상도에는 충무바다가 있다. 충무바다는 슬프고도 경쾌하게 ‘그대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를 부르고 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랑은 아마 사랑이 아니리라. 첫사랑, 짝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세시봉 카페라면, 죽을 때까지 기억 속에서만 스무 살 기억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삶이라는 카페의 다른 점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이것이 세시봉의 마지막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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