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창문을 열면

2015-03-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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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비영리기관대표>

긴 겨울이 끝나려나보다… 질리도록 많이 왔던 눈, 추웠던 겨울을 살짝 밀어 제치고 오늘은 50도가 훨씬 넘는 봄 날씨다. 난방비 신경 쓰여 꽁꽁 닫아놓았던 창문들을 오후쯤에 활짝 인심 좋게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이모에게 배워온 쌈 된장을 찐다고, 버섯, 아몬드, 멸치 등등을 부엌에 가득 늘어놓으며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봄기운에 나는 흠뻑 취하고 있었다.

열어놓은 창문에서는 산책로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 강아지와 나들이 하는 발자국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산새소리도 들려오는 듯싶다. 긴 겨울로 꽁꽁 닫아놓은 창문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내게는 오늘 마치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소리처럼 내 가슴에 청아한 울림을 만들며 내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슴이 작게 뛴다. 엔돌핀이 도는 것을 느낀다.


“아! 이 소리, 겨울 내내 내가 가끔 우울해졌던 이유가 바로 이 사람소리 ,생명의 소리를 그리워했었구나!” 들려오는 이웃의 소리를 통해 그냥 내가 이유 없이 행복해지는 이 소리! 내가 그들 가운데 정겹게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것을 내게 말해주는 것 같은 이 소리! 새삼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는 순간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서 그들을 보면 누구라도 다정하고 밝게 웃어주고 반갑게 손 흔들어줄 것 같다 “내 옆에, 내 이웃에 있어주어 참 고마워요! 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이런 행복은 ‘창문만 열면 되었었는데, 그래 창문만 열면…’

우리 집은 바로 산책로를 끼고 있기에 창밖만 보면 이 동네 모든 사람들과 가족들을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곳이다. 긴 겨울을 젖혀 버리고 활짝 열어 제친 창문으로 들어오는 생명의 소리 바로 사람 사는 소리는 얼마나 그립고 소중한 것들인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많은 군중들을 헤치고 걷고 마주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이다. 이러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과 우리는 얼마나 마음의 창을 열고 살아가고 있는가.

목적을 갖거나 이익 손해를 생각하며 만나는 사람, 유익하고 필요한 만남인지를 생각하고 만나는 사람, 하다못해 친구를 만나도 내가 좋아하고 내가 편한 사람을 생각하며 만나는 삶,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피하며 사는 삶속에서 얼마나 우리는 스스럼없이 마음의 창을 열어젖히고 만나는, 그래서 사람소리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그 행복 속에 가슴이 뛰는 순간들을 맛보며 살까?

그보다는 만나서 피곤한 삶, 만나서 부담스런 삶, 만나서 마음이 힘든 삶, 이런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오늘 활짝 아낌없이 시원스레 열어젖힌 창문에서 예기치 않은 행복한 가슴을 뛰게 했던 사람소리, 생명의 소리를 내게 담아내며 우리의 삶속의 만남에도 아낌없이 마음의 창을 열어놓고 만나는 삶은 행복을 느끼고 만나며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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