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대사 피습사건과 사대주의

2015-03-16 (월)
크게 작게
이광영 (전 언론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많은 뒷얘기들이 국내에서, 해외에서 무성하다. 박근혜정부는 범인을 종북주의자로 몰아 이번기회에 민족화해 추구세력 이른바 종북세력을 뿌리 뽑으려는 한국판 메카시 선풍, 공안정국을 유도하려 한다고 야당 등 비판세력들은 의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해 들어 모처럼 싹이 튼 남북대화 움직임도 된서리를 맞고 얼어붙어 있다.

사건의 배경은 복잡하고 여러 갈래로 분석될 수 있겠지만 한국인의 지나친 대미사대주의도 이번기회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의식이라 여겨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동순방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몸소 병원을 찾아 환자를 위문하는 자리에서 ‘한미동맹에 테러를 가한 공격행위’라고 사건의 성격을 서둘러 규정하였다. 당국은 범인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엮고 배후로 수사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석고대죄단식, 쾌유를 비는 무당춤, 위문 발레퍼포먼스, 보신에 좋다며 개고기를 싸들고 간 위문객 등등... ‘과공이 비례’라는 옛말이 생각되는 낯 뜨거운 사대주의적 행태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크고 힘센 나라를 섬기며 주체성 없이 그들에 기대어 존립을 유지하려는 생각이나 주장을 사대주의라 한다. 자신의 존엄을 부정하고 스스로 비하하거나 얕잡아보며 자기 힘을 믿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며 위협이나 압력에 쉽게 굴복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하며 제물로 바치는 자기부정, 자기비하의 노예근성이라 하겠다.

이런 사람일수록 주체성이 없고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면 우르르 따라가는 유행에 휩쓸린다. 요즘의 한국사회가 이런 문화사대주의에 찌들어 있다.현대는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순식간에 외래문화에 휩쓸린다.

이런 때 일수록 자주성이 요구되고 있다. 비정상적인 영어열풍, 세계최고 과학문자인 한글경시, 외래어범람, 서구형 얼굴과 체형을 숭상하는 성형수술의 대유행, 양주, 명품선호 풍조, 모두가 제정신을 잃고 남의 것을 숭상하는 사대주의의 폐습이라 하겠다. 해방 후 곧바로 분단되어 70년이 된 올해. 남과 북 지도자들은 분단을 끝장내자고 똑같이 선언하였고 그것을 위한 대화를 준비하였다.

이번 사건의 범인은 남북대화를 미국이 방해한다고 보고 분개하여 범행하였노라고 현장에서 끌려가며 그 동기를 밝혔다. 전쟁을 방지하고 화해평화를 위한 대화는 민족이익의 출발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추종하느냐, 평화와 민족화해냐?

물론 범인의 행위는 불법이며 테러는 인류의 적이다. 그러나 그 동기에 대한 가치판단은 민족수난의 원흉인 분단에 대한 향배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하며 이 사건의 핵심과 본질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