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리퍼트대사와 쾌유퍼포먼스

2015-03-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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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중국 대륙을 장악한 원 나라의 침략을 자주 받아 괴로움을 당했다. 이때부터 한국에는 사대주의사상이 퍼지기 시작, 원과 명, 청나라 등에 조공을 바치면서 살아야 했다. 이로 인해 한민족에게는 사대주의, 식민지 근성이 소리 없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사상이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한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의 피습사건과 그의 쾌유를 비는 한국인들의 각종 퍼포먼스를 보면서 잠시 떠올려본 생각이다.

요즘 인터넷에 등장한 한국인들의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행렬을 보니 대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히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이 오히려 대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종교단체 관계자들이 미 대사관 앞에서 화려하게 채색된 한복을 입고 엎드려 절하면서 미안하고 죄송하다 하는 가하면, 어떤 무용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춤추면서 위로 공연을 했다. 또 이름난 한 공인은 한국어로 땅에다 ‘석고대죄 단식’ 그 밑에는 영어로 ‘So Sorry’라고 써놓고 혼자 앉아 그야말로 석고대죄를 하고, 어떤 노인 단체들은 ‘대사님, 너무 죄송하고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또 개고기를 들고 병문안 간 노인들, 수십 명의 장구부대가 무당처럼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가운데 원을 두르고 땅에 엎드려 두 손 들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모습 등등. 이 쾌유 퍼포먼스는 즉각 해외로 번져나갔다.

미국은 이 사건을 한 정신병적인 극단주의자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며 한미동맹의 굳건함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반응은 왜 이리 요란한 것인가. 물론 중책을 맡은 일국의 대사가 남의 나라에 와서 있을 수 없는 사상초유의 테러를 당했다. 자칫했으면 목숨도 잃을 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조국인 미국도 초연했고 당사자는 누구보다 의연했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과도하게 반응한 건 한국국민 이었다. 혹시 은연중 강대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발동한 것은 아닌지... 이 사건은 정부와 관련기관이나 단체 차원에서 적극 나서고 온 국민들은 조용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쾌유를 비는 것이 온당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어떤 대형사건이 나면 본질 보다는 그 이상으로 반응할 때가 종종 있다. 큰 사건일수록 냉정해야 본질이 눈에 들어오고 본질이 희석되지 않는 법이다.
정신 나간 극단주의 테러범 김기종은 이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으니 배후세력 등 자세한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리퍼트 대사는 이제 퇴원했다. 그는 말했다. “비온 뒤에 땅 굳는다. 같이 갑시다.” 다시 한 번 한미관계의 공고함을 확인해 보였다. 그리고 “덤으로 얻은 인생, 한미 관계발전에 더욱 이바지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의 쾌유를 빌며 그의 향후 행보를 조용히 돕는 마음으로 지켜보아주는 것이 그에 대한 답일 것이다.

테러범 김기종은 조사에서 “김일성은 훌륭한 지도자다,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며 북한을 찬양했다. 이런 자들이 있는 한, 한국은 항시 북한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 한미동맹이 강조되는 시기다. 이런 때에 한국을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아들까지 한국에서 낳았고 이름도 세준이라 지었다는 리퍼트 대사, 그의 빠른 쾌유가 너무 반갑고 든든하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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