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종을 초월한 입양

2015-02-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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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우리가 한인이란 이유로 한국인 입양사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1980년대에 식당에서 어느 미국 부부가 우리 식탁에 와서 한국인이냐 물으면서, 자기네가 최근에 한국아이를 입양했다고, 애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에도 이런 우연한 만남이 종종 있었고, 또 직장 동료나 미국 이웃 사람들과는 개인적으로 한국입양아에 대한 대화가 오고가고 했으나, 나에게는 그런 대화가 떳떳하지 못했고, 국경을 초월한 입양에 대해 국가적인 수치감도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족관계나 원만한 대인관계가 사회의 근본이라는 문화 속에서 가난하게는 살았어도, 국가적 긍지를 갖고 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처음 전쟁고아들로 시작된 국외 입양이, 그 이후에는 고아 아닌 고아가 입양되어 오는 걸 보고 심한 감정의 교차를 느꼈다.

더구나 미국에서 자라날 입양아들 입장에서도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트란스래이샬 입양 (Transracial Adoption)’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1990년 초기 뉴욕주 북쪽에 살 때 우리 한인 교회로 ‘Love the Children (LTC)’이란 입양 가정 단체의 임원과 부모들이 교회 목사를 찾아와서 자기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전통과 긍지를 가르치고 심어주고 싶다면서, 근처에 사는 한국주민들과 유대를 가지고 싶다고 전해왔다.

그리하여 여선교부 서너 명의 회원들과 LTC의 임원들, 그 외에 관심 있는 한인 주부들로 구성된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한마음’이란 단체가 형성 되었다. 한마음 회원들은 1년에 서너 번, 한국과 미국의 전통적인 행사들, 즉 설날행사, 여름 소풍, 추석과 추수감사를 겸한 가을 행사를 진행했다.

자주 만나서 행사를 토의 하는 과정에서 미국 가정과 한국 가정의 유대도 강화됨과 동시에 문화 교류도 활발해짐을 느꼈다. 음식은 주로 한국 음식으로 한인 주민들이 집에서 준비도 하고, 지역의 한국식당에서 기부도 받고 하여 늘 충분했다. 설날에는 애들이 부모에게 세배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널뛰기, 제기차기 등 전통 놀이를 했다. 여름 소풍, 가을행사 때도 맞는 한국음식을 장만했다.

반면에 한마음 한인 회원들은 한국에서 오는 위탁부모나 친척들로 전해오는 편지 번역 혹은 한복 수선 등을 하곤 했다. 또 지역사회 중심으로 ‘버디 패밀리 제도’를 조직, 아이들 나이를 중심으로 미국가정과 한인가정이 짝지어 교제하고, 지역 내 한인 대학생과 10대 입양 아이들과의 ‘멘토링 제도’도 만들어 활동했다.

한 10여년 입양 부모들과의 교제에서 그들의 자녀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헌신을 목격했다. 그들의 애틋한 걱정을 우리와 나눌 때, 나는 부모 노릇을 함부로 했구나 하고 부끄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한마음 행사가 진행된 것은 아이들이 대학을 거의 다 떠난 후여서, 직접 참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돌이켜보면 위의 경험을 통해 나의 처음 생각과는 반대로 인종과 국경을 넘어 미주나 유럽 각지에서 환영받는 트랜스 래이샬 입양이 더 폭이 넓고, 깊이 있는 세계 다양화에 다소나마 기여를 했으리라 믿는다.

황병남 (전직 대학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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