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상 생활의 의미

2015-03-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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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3주 만 지나봐, 나도 장바구니 들고 시장에 갈 거야. 아침마다 점심 가지고 출근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가 문병 간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빨리 나아야지 통근 길에 가로수 자라는 모습을 볼 텐데.” 다리를 다쳐서 누워있는 남편의 말을 듣고, 아내가 말한다. “빨리 나아서 할 일이 많은데, 웬 나무이야기만...” 남편이 되받는다. “매일 보면서 지나다녔으니 그냥 궁금해서...” 여행 떠나려는 어린이도 빠지지 않고 한마디 한다. “엄마, 나 스키트립 간 동안에 강아지 메리에게 제시간에 밥을 부탁해요.”라고.

우리 모두에게는 제각기 일상 생활의 스케줄이 있다. 이것들은 별게 아니면서 중요한 뜻을 가진다. 이 중의 한 가지를 빠뜨렸거나, 조금이라도 바뀌면 생활의 리듬이 삐걱거린다.


새해를 맞으면 달력을 펴놓고 공휴일의 수효와, 그것이 어떤 요일인지 보면서 즐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의 생활에 다양한 축제일이 없다면 색다른 즐거움은 어디서 찾게 될까. 이처럼 많은 사람과 물건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이루어지는 흥겨움을 대신하는 것이 따로 있을까. 확실히 우리에게는 단조로운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이 있고, 이것을 채우는 것이 각종 연중행사이다.

세시기를 보면 오랜 옛날부터 철에 따른 민속적인 연중행사가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꾸준히 일하지만 때때로 한바탕 흥겹게 놀면서 몸과 마음을 푸는 지혜를 옛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일상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섞는 지혜이기도 하다.

한국 TV를 보고 있으면 명절 전후의 교통량이 대단하다. 명절맞이하러 가는 차량들 안에서는 시간이 지체되어도 앞으로의 즐거움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계속되겠지만, 돌아오는 길은 어떨까. 그때 역시 참을만 하지 않았을까. 마음과 몸에 익숙한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마치 평상복 같은 일상 생활은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번 첫 부분에 소개한 글이, 시시한 일상 생활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까닭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된다. 익숙한 생활은 특별히 마음을 쓰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따라갈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이 편하다. 그러다보면 무기력하고, 따분한 생활이 될 염려가 생긴다.

일상 생활에 변화를 주면 활력이 생기는 예를 어린이들의 일기에서 본다. A의 일기는 똑같은 이야기가 열흘쯤 계속되었다. “오늘은 숙제하고 게임을 하였다.” 그에게 색종이와 크레용을 주었다. 그의 일기는 달라졌다. “오늘을 수퍼맨을 그렸다.” “오늘은 색종이를 찢어서 붙였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 생활에 변화를 주면 무미건조하거나 무기력할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애완동물을 기르기, 텃밭 만들기, 집안 꾸미기, 밥상 차리기, 게임하기, 노래자랑, 독서 내용 발표... 등의 가정 행사를 계획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가족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와 개별적인 일을 구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저녁밥 먹을 때가 좋아요. 저마다 그날 지낸 이야기를 해요. 나는 친구하고 싸운 이야기를 하였어요. 아빠하고 안 싸운다고 약속하였어요.” “할머니가 선물을 주셨어요. 재미있는 책이에요. 책 이름은 ‘내 강아지’에요.” “우리는 오늘 청소를 하였어요. 나는 쓰레기를 버렸어요. 오빠는 책꽂이에 책을 넣었어요.‘ 이런 일기 속에서 즐거운 가족의 일상 생활을 알 수 있다.

일상 생활은 식탁의 밥이고, 옷 중의 속옷이고, 물감 중의 삼원색이고, 건축의 주춧돌이고, 학용품 중의 책이고, 초목의 씨앗처럼 생활의 기반을 이룬다. 매일 거듭되는 일상 생활은 색깔이나 향기가 없이 무미건조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 생명도 개성도 있다. 따라서 일상 생활의 작은 변화라도 날마다 거듭되면서 무성한 나무로 성장하고 색색의 열매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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