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숫자 3에 얽힌 이야기

2015-03-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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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어느 덧 3월이다. 봄은 왔건만 봄이 아니다. 한인사회는 선거로 시끌벅적거린다. 돌파구는 안 보인다. 헤어나지 못하고 추락할 뿐이다. 그러니 숫자 3처럼 조화로운 한인사회가 그리울 뿐이다.

3은 1과 2가 합쳐진 숫자다. 1은 양, 2는 음을 뜻한다. 3은 음양의 더함이자 한 몸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완전한 수란 의미다. 피타고라스도 3을 두고 생전에 완벽한 숫자라 했다. 통합의 숫자 1과 다양성의 숫자 2의 결합으로 봤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숫자 3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개국 설화인 단군신화를 보면 환웅은 풍백, 우사, 운사 등 3인과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땅으로 내려왔다. 단군신화는 환인, 환웅, 단군 등 천지인 3개 구조다. 환인은 하늘을 상징한다, 환웅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다. 그리고 단군은 땅을 의미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3이란 숫자를 참으로 신성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속담에서도 ‘3’이란 숫자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내 코가 석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중매 잘하면 술이 석 잔이요, 못하면 뺨이 석 대’등 숫자 3이 단골메뉴다. ‘맹모삼천지교’나 ‘삼고초려’ 등 사자성어에도 3이 들어 있긴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에도 늘 3이 자리 잡고 있다. 삼각형, 삼강오륜, 삼거리, 작심삼일, 삼심제도, 제일 예쁜 셋째 딸에 이르기 까지. 심지어 승패를 가리는 윷놀이, 줄다리기, 가위바위보도 삼세번이 기준이 되어 판가름하고 있다.

종교에서 숫자 3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불가에서는 3불, 3계, 3세 등 ‘3’이란 숫자가 많이 사용된다. 3불은 아미타불, 석가모니불과 제불 등을 일컫는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의 주불이다. 석가모니불은 사바서계의 교주다. 그리고 염불하는 중생의 왕생을 보증하는 것이 제불이다. 3계는 생사유전이 그침 없는 중생계를 육계, 색계와 무색계로 분류한 것이다. 3세란 전세, 현세 그리고 내세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세 개의 보물인 삼보는 부처, 부처의 가르침 그리고 승려를 가리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숫자 3을 ‘하나님의 수’와 ‘부활의 수’라고 부르기도 한다.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의 교리에 의해 3은 ‘하나님의 수‘다. ‘부활의 수‘는 예수가 사망한 지 사흘 만에 부활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 기도한다. 열 두 제자 가운데 중요한 일에는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 등 세 제자를 데리고 다닌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할 것도 예언하고 있다. 기독교에서의 ‘3‘은 ‘하나님의 수‘로 부활, 신성, 거룩 등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사항을 의결한 뒤 의사봉을 꼭 3번 두드린다. 그 이유는 의사 결정을 천신, 지신 그리고 백성들에게 고할 만큼 완벽함을 상징하는 일종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후유증이 없도록 신중을 기해 의사봉을 두드려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조상들도 3을 길수나 신성수라 했다. 천지인(天地人)을 기본으로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뤄진 숫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3의 사상은 조화로 하나가 되는 논리다.

한인사회는 뉴욕한인회장 선거로 여전히 난리법석이다. 선관위가 ‘자격박탈’이란 의사봉을 너무 쉽게 두드린데 따른 후유증이다. 선관위, 입후보자들, 역대 한인회장들이 “잘했다, 잘못했다“ 제각각 아우성이다. 음양흑백논리에 빠져 ‘적’ 아니면 ‘아군’이다. 이미 조화와 타협은 실종된 듯하다. 온통 갈등과 대립이 판칠 뿐이다. 결국, 한인사회는 흑백논리에 물들고 찌들어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음양이 완벽하게 조화된 3의 사상을 일깨워 ‘타협과 화합’의 실마리를 찾는데 진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인사회가 하나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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