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결과, 노년의 세월

2015-02-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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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객원논설위원>

인생은 노년을 잘 맞이하고 잘 보내야 한다. 한 사람의 삶의 노정이 결과로 나타나는 때이기에 그렇다. 사람마다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의 소설이 있더라도 자신의 인생길의 살아온 내용에 비하면 비교 될 수 없다. 소설은 소설인데 자신이 걸어 온 인생길은 살아 꿈틀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삶의 종말, 즉 죽음을 앞에 둘 때 그 죽음의 자리가 좋아야 한다. 죽음 자체는 한 사람의 생의 마지막이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그가 살아온 살아있는 삶의 소설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 오래 살아남아 기억으로 읽히어 진다. 그러니 생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된다.


JP(김종필)가 지난 2월23일 부인(박영옥)의 장례식에서 정치인들에게 쓴 소리를 남겼다. “대통령 하면 뭐 하나. 다 거품 같은 거지. 천생 소신대로 살고, 자기 기준에서 못했다고 보이는 사람 죽는 거 확인하고, 거기서 또 자기 살길 세워서 그렇게 편안하게 살다 가는 게 승자”라고. JP는 89세로 휠체어에 의존한다.

그리고 또 “정치는 허업(虛業)”이라 말했다. 허업, 속이 텅 비었다는 뜻이다. 박정희대통령의 조카사위로 대통령만 안 했지 한국의 모든 권력을 쥐어봤던 JP다. 90을 앞둔 고령의 나이에 그가 한 말은 과거를 돌아보니 모든 게 허무하지 않은가란 뜻에 너무 욕심내지 말란 의미로 비쳐진다. JP의 노년, 과연 좋은 건가.

JP와 거의 같은 나이에 아직도 현장을 누비는 할아버지 사내가 있다. 88세의 송해(송복희)다. 코미디언협회는 4월19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송해를 위한 헌정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 송해는 6.25, 월남할 때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혈혈단신이 되어 자신의 인생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아 송해란 예명을 지었다 한다.

그런데 지금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송해가 아니라 망망대해를 품고 있는 송해처럼 보인다. 송해는 현재도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며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에게도 그의 노년의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다. 인생의 노년을 이토록 잘 맞이하고 잘 보내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사람에 대한 ‘헌정공연’, 대단한 뜻이 담겨있다.

JP와 송해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그래도 70의 나이인 가수 서유석이 25년 만에 신곡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를 발표했다. 노래제목 자체가 나이를 풍기지만 아직도 서유석은 젊은 늙은이에 속한다. 나이 70세에 어디 가서 노인 행세를 하려다간 봉변을 당한다는 게 요즘 세태다. 그러니 60대는 어쩌랴.

서유석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말에는 이런 게 나온다. “세상나이 구십 살에 돋보기도 안 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를 씹는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하게 했는가/ 세상은 삼십년 간 나를 속였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93세의 노모가 센프란시스코의 막내 누이 집에서 사신다. 1996년 남편을 떠나보낸 후 홀로 지금까지 살아오시며 하시는 일이 있다. 9남매와 손자녀 수십명의 삶과 생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신다. 그 중 하나라도 잘못되지 않고 모두 다 잘 살아가기를 소원하시며 새벽마다 기도하신단다. 노년의 삶 중 보람된 일이 아닐까.

인생은 노년을 잘 맞이하고 잘 보내야 한다. 인생은 한 권의 살아있는 소설로 노년은 소설의 완성을 위해 가는 마지막 부분이기 때문이다. 89세의 JP와 88세의 송해. 나름대로 소설의 막장을 쓰고 있다. 서유석, 70이 되었으나 새 출발로 살자고 한다. 떠오르는 태양은 눈부시다. 그러나, 지는 황혼의 석양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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