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정의 우주 원리

2015-02-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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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밖에는 눈이 쌓여 있어 언제 꽃 봉우리가 피어날지 감감한데 집 안에 있는 선인장과의 화초에서 꽃이 피고 있다. 얼마 전 수십 송이가 연쇄적으로 핀 다음 꽃은 다 지고 없었다. 그런데 다시 몇 송이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무슨 징조인가. 어쨌든 꽃은 좋은 뜻을 지니고 있음으로 반갑기만 하다.

20년 가깝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 화초의 생명은 언제까지 갈까. 그리고 때가 되면 피어나는 꽃망울들, 또 시간되어 지는 꽃송이들을 보며 세상과 우주는 모두 피고지고, 지고 피는 과정의 시간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화분의 꽃만 과정인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 또한 그런 것 같다. 태어남과 죽음의 반복되는 과정.


인간에게 있어 삶이란 태어남과 죽음 그 사이의 시간이다. 즉 ‘으앙’하고 태어난 후 눈을 감기까지의 과정, 그게 바로 삶이 아니겠는가. 한 인간의 삶은 생(生)과 사(死)로 일단락된다 하더라도 인류 전체의 삶은 그게 아니다. 계속적인 인간들의 태어남과 죽음의 과정이 인류를 지탱하게 하는 근간이 되며 계속성이 된다.

우주가 지니고 있는 순환의 법칙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겨울이 춥다 해도 때가 되면 봄이 되니 희망이 아니겠는가. 봄이 돼 아지랑이 피고 꽃이 피는가 하면 울창한 숲을 이루는 한 여름이 된다. 그리고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되나 하면 눈보라 휘날리는 겨울이 다가온다.

유난히도 올 겨울 미국의 동북부는 다른 해와 달리 눈이 많이 오고 추운 겨울이다. 지난해만 해도 눈이 온 다음 기온이 오르고 비가 내려 말끔히 눈들을 씻어 주었건만 올 겨울은 아니다. 눈 다음에 비, 비 다음에 기온이 하강해 얼음 빙판이 된다. 그리곤 또 눈이 내린다. 엊그제는 기온이 화씨 1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알프레드 N.화이트헤드는 그의 저서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에서 우주의 흐름과 인간사와 철학의 모든 법칙을 실재 속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빅뱅 이후 우주는 팽창하는 과정 속에 있다. 팽창이 머물 때엔 다시 수축과정이 된다. 이런 과정은 모두 현재의 실재 속에 들어있어 순간과 영원을 함께하게 한다.

과정을 흐름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인간의 삶 역시도 과정, 즉 죽음을 향해가는 하나의 흐름이다. 죽음 또한 흐름이며 그것이 끝은 아니다. 또 다른 세계로의 진입과정이다. 그것은 아직도 확실하게 증명되지 못하고 있는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세계(靈的世界)로 가는 여행의 흐름이며 종교적 발상에 있는 그런 흐름과 같다.

그 흐름은 과정 안에서 돌고 돈다. 태어남과 죽음, 죽음과 태어남.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 몸속의 피 속의 흐름. 작은 화초 선인장에 흐르는 생명의 과정들. 화이트헤드는 천년만년 움직이지 못하고 비바람에 깎이어 나가는 큰 바위 속에도 분자가 살아 있으며 그 돌덩이 안에도 실재와 과정의 흐름이 있음을 갈파한다.

그래서 그의 과정철학은 과정신학, 즉 범재신론(汎在神論·panentheism)을 낳게 한다. 범재신론은 초월자만의 유신론이나 내재자만의 범신론을 극복하여 신의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다 강조하는 양극적 유신론(dipolar theism), 자연주의적 유신관(naturalist theism), 혹은 변증법적 유신관(dialectical theism)이라고도 불린다.

조금만 기다리면 봄은 반드시 돌아온다. 희망의 상징인 봄,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봄을 기다리는 우리네 마음! 우주의 드넓은 과정의 흐름 속에 우리네 인생의 과정도 흘러간다. 오늘이 가면 또 내일이 흐르고. 그런 흐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흐르는 신(神)의 과정도 있음에야. 과정의 우주 원리(原理) 소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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