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 주세요, 복 주세요”

2015-02-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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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계속 되는 설날 연휴로 한국의 고속, 시외버스 터미널, 전국 철도역, 공항 등에는 하루 온종일 선물꾸러미를 든 귀성행렬로 북적거리고 있다.

고향을 찾아 오랜만에 부모 형제를 만나거나 성묘 혹은 가족 나들이를 즐기는 이들의 행렬을 TV뉴스나 신문을 통해 보던 미주 한인들은 한국의 부모나 일가친척에게 국제전화를 걸고 있다.


미국에 살다보니 양력 1월1일에 “해피 뉴 이어!” 하고, 음력 1월1일에 또 “해피 뉴 이어!” 하니 두 번 새해를 맞는다. 좋은 것은, 양력설에 다부지게 한 올해의 목표가 흐지부지되어가는 시점인 한 두어 달 후 또 새해라, “지난 해 안 좋은 일은 다 가버리고 올해에는 좋은 일만 생겨라”하고 다시 기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 받으세요” 하는 덕담을 주고받는데 이 복(福)은 대체로 장수, 재물, 몸과 마음의 건강, 베품, 자연사 등을 이른다. 이 복(福)을 비는 도구로 요즘은 없어진 풍습인 복조리가 있다.

40~50년 전의 한국은 섣달그믐부터 대보름까지 복조리 장사가 “복조리 사세요, 복 사세요” 하면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었다. 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싸리가지 속대를 일일이 손으로 엮어 만든 복조리는 쌀을 이는 살림도구였다. 쌀을 일듯 액운을 걸러버리고 한 해의 무병장수와 복을 비는 조리는 년 초에 어느 집이나 사는 것이 풍습이었다.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복조리를 사서 조리 안에 성냥, 초, 실, 동전 등을 넣어 부엌이나 방문 벽에 걸어 놓고 1년 내내 복을 빌고 재물이 불어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영화처럼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부산 서면에 살던 유년시절, 정월 초하룻날 대청마루를 내려간 엄마는 한밤중에 마당에 던져진 복조리를 들고 서있었다. 이 복조리 값을 받으러 온 복조리 장사는 시세보다 엄청 높은 가격을 불렀고 집에 들어온 복을 안 살 수도, 물릴 수도 없어 다소 난처해하던 엄마의 표정이 생각난다. 복을 사는 것이라 하여 복조리 값은 깎지도 물리지도 않았던 당시였다.

결국 복조리를 샀고 일자형 대청마루 방문 벽에 일 년 동안 하나로 묶여져 걸려있던 복조리 한 쌍은 참으로 신기했었다. ‘정말 이게 복을 주는 것인가? 어디에 복이 담겨있단 말인가.’

세월이 지나면서 기계로 돌을 골라내게 되어 쌀을 일 필요가 없다보니 점차 복조리는 사라졌고 집안장식용으로만 남았다. 요즘은 대나무 복조리는 드물고 플라스틱 복조리나 중국산 복조리가 많이 보이고 있다. 복을 불러들이는 복조리와 같은 것이 요즘은 빨간 지갑이라 하겠다.

지금, 맨하탄 차이나타운에 가면 빨간 지갑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을 것이다. 진짜와 흡사한 가짜 명품지갑은 100달러 이상이다. 중국인들은 행운을 불러오는 색이라 하여 빨간색을 무척 좋아한다.


오래 전엔 빨간색 염색이 고급기술이다 보니 빨간 지갑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빨간 지갑을 가지면 돈이 들어온다는 말로 퍼져나간 것이다. 붉은 색이 악귀를 쫒아내는 영험이 있다고 믿다보니 돈을 간수하는 지갑은 붉은 색이 좋다는 속설도 있다.

그런데 본인 경험담으로 과거 차이나타운에서 산 빨간색 장지갑, 한국에서 친구가 준 빨간색 지갑 등 몇 개나 지닌 적이 있었는데 그 수년간 돈이 그리 풍족했던 것 같지는 않다.

요즘은 녹색이나 황금색 지갑도 인기가 있다고 하니 모든 것이 자신이 믿기 나름인 것이다. 2015년 신년운세의 가장 핫한 테마가 바로 금전운이라 한다. 복을 주는 복조리나 행운을 주는 빨간 지갑 타령을 하는 것은 워낙 경기가 안 좋다보니 다들 설에는 금전운이 있기를 바라는 심정에서다. 한국의 설 연휴동안 우리도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복 주세요, 복 주세요”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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