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이상의 값진 것

2015-0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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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우리를 택하게 된 이유를 알고 싶은데요.” 약속 시간에 약속 장소에서 만난 대학생들과 마주 앉자마자 물었다. “사실 어려운 일이었어요. 계획한 작품의 성과를 올려야 하니까...” “우리 그룹의 지혜를 모았어요. 그래서 대상을 한국학교로 결정했고(고맙습니다-필자), 우선 명단을 모았지요. 그랬더니 꽤 많더군요.” 그날 두 명의 학생을 만났는데 그들은 번갈아 가면서 설명을 하였다. 학교 소재지, 학생 수, 역사와 전통, 특색... 등의 자료를 모아서 검토하였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대답할 차례였다. 가지고 간 자료들을 건네면서 그들이 알고 싶은 것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였다. 영화촬영 전에 이런 사전 준비를 빈틈없이 하지 않고서는, 당일 시간만 허비하고 양쪽에서 바라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 뉴욕 소재 N대학 학생들이 전공학과에서 ‘어느 학교의 하루 생활을 소개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그들의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들과의 면담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몇 학교를 대상으로 전화하였을 때, 가장 뚜렷하게 환영하는 대답을 얻었기 때문에 본교가 선택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유는 본교 자체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의욕은 있었지만 비용이 염려되어 미루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두 단체의 목적이 일치하였다.

한국에 있는 모회사에서 몇 년간 다액의 찬조금을 보내주셨다. 뜻밖의 일이어서 감사드리고 있었는데, 담당하신 분이 잠깐 뉴욕에 오신 일이 있어 만나 뵈었다. “어떻게 저희를 도와주시게 되었나요?” 전부터 알고 싶던 일이어서 여쭤보았다. “저희는 나름대로 정보를 모았습니다. 좀 도움이 되십니까?”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만 드리고 커피만 마셨으니, 마음에 걸린다. 그 이후는 한국내 소식 중 유독 그 회사 일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좀 걱정이 되네요. 요즈음 그 회사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어요.” 타교사와 이렇게 몇 번 염려한 일이 있다. 이것은 결코 찬조금을 염두에 둔 일이 아니다. 그냥 우리 회사 일처럼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e-mail이 왔다. 그 회사 사정을 알리는 사연이었다. 따라서 보내던 찬조금을 끊게 되었으니 양해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결코 찬조금을 못 받게 된 일 때문이 아니고, 마치 우리 회사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찬조금을 못 보내겠다는 통지문이, 거액의 찬조금보다 더 큰 교훈을 주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의 끝마무리를 잘 해야 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회사가 어려울 때 잊기 쉬운 일처리를 반듯하게 하신 일을 감사한다. 기원하는 것은 오직 그 회사가 다시 활기를 찾기 바랄 뿐이다.

뉴욕에서 50년 동안 한국학교 일을 하다 보니 삼대(三代)를 가르치는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 어린이를 데리고 오신 그 부모님과 그 조부모님까지 가르친 일이 있게 되었다. 아무나 느낄 수 없는 드믄 기쁨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낯익은 분을 만나서 말을 잃었다. 그분의 외아드님이 청년기에 세상을 떠났다는 풍문을 들었는데, 바로 그 어머님이 학교를 방문하셨다. 그리고 나서 다른 분한테서 편지봉투를 전해 받았다. 아드님 생각을 하면서 기부금을 보낸다는 사연이었다. 말을 잃고 편지봉투를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경동님, 잊지 않고 있어요.”라고 세상 떠난 아드님 이름을 불렀다.

한 인간이나 한 단체의 역사가 길어진다는 것은 그 큰 흐름에 따뜻한 에피소드들이 모인다는 이야기다. 즉 인간미 넘치는 정겨운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인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공기와 함께 인간미를 호흡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도 있지만, 그것은 그 반대의 성선설에 대한 말일 뿐, 물욕을 견제하는 경고의 뜻인 줄 안다.

필자의 긴 인생 역정에서는 착한 분, 아름다운 분, 노력하는 분,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분들을 만났을 뿐이다. 우리 스스로 공부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서로 도와가며 사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 같이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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