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건 없는 사랑

2015-02-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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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신들이나 인간이 벌이는 흥미 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의 극치는 그 재미를 더해준다. 바빌로니아에서 가장 멋진 청년 파라모스와 가장 아름다운 처녀 티스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반대로 이들은 결혼을 못했다. 그러나 갈수록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을 어찌 못해 서로 벽 하나 사이 틈을 통해 매일 사랑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벽에 사랑의 입맞춤을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가족이 잠든 사이 들판 흰 뽕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때 입에 피가 묻은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티스베는 몸을 감추었다. 그런 중에 그만 쓰고 있던 베일을 땅에 떨어뜨렸다. 사자가 그걸 피 묻은 입에 물고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후에 도착한 파라모스가 이를 보고 티스베가 사자에 물려죽은 줄 알고 베일을 들고 약속장소인 뽕나무 아래로 가서 칼을 뽑아 제 가슴을 찔렀다.


“나의 피로 네 몸을 물들이리라” 하면서... 이윽고 숨어있다 나온 티스베가 이 광경을 보고 나도 뒤를 따르겠다며 자결했다. 죽음만이 당신과 나를 갈라놓을 수 있었으나 그 죽음도 내가 당신 곁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 울부짖으며...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사랑의 극치다.

오늘날 남녀 간의 사랑은 대부분 조건부로 상대를 좋아하고 조건에 따라 결혼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70년대까지 한국이 빈곤했을 때 남녀 사랑은 아무 조건 없이 순수했다. 그러나 잘 살게 되면서 황금만능주의 팽배로 사랑하고 결혼하는데도 집안배경, 직업이나 연봉 등과 같은 조건이 붙었다. 심지어 ‘사’자 붙은 신랑감과 결혼하려면 집, 건물, 자동차 등 열쇠가 3개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결국 결혼 두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는 14일은 밸런타인 데이다. 이 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주거나 꽃을 선물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날이다. 사랑을 일깨우기 위해 이런 날을 1년에 딱 하루만 정한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사랑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매일이 사랑의 날이어야 한다.

요즘은 마켓마다 사랑의 뜻이 담긴 카드, 초콜릿, 사탕, 하트모양의 색종이 등 예쁘고 사랑스런 물건이 가득 쌓여 있다. 물건들은 사랑을 표시하기 위한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진짜 사랑의 감정보다 어쩔 수 없어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도 있다 한다.

사랑과 하트의 증표가 가득 쌓인 매장을 무대로 한 이야기다. “내가 이 짓을 왜 하지?” 하면서 “이 짓을 안 하면 아내가 나의 목을 비틀거다!” 조금 후 들어오는 한 여인에게 “해피 발레타인 데이” 하니 그녀가 말한다. “내가 여길 왜 왔는지 아세요? 당신은 믿지 못할 거예요. 우리 사장이 자기 부인한테 줄 카드를 나보러 사오라 그러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하는 말, “내 남편이 만약 내게 줄 카드를 다른 여자를 시켜서 산다면 남편을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선물은 의미가 없다. 전자기기 발달로 갈수록 메말라 가는 현대사회, 지금 세상에는 사랑 없이 혼자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들 중에는 고독감을 이기지 못해 삶을 포기, 미국에서만 매년 약 3만 명의 자살자가 생겨나고 있다 한다.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다.

특별히 다가온 밸런타인데이, 진심으로 마음이 담긴 꽃이나 초콜릿을 누군가에게 주어 사랑의 마음을 전해보자. 행복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다. “당신이 있기에 나의 생이 풍성합니다” “당신은 내게 제일 소중합니다” “당신이 없다면 내 인생은 정말 공허할 것입니다” 조건 없이 사랑을 말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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