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야의‘카프리초’전시를 보고

2015-02-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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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국(소설가)

‘외투’는 가난한 말단공무원 이야기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의 매서운 겨울을 나기 위해 어렵게 새 외투를 장만했다가 강도에게 빼앗기고, 그걸 찾겠다고 경찰서며 높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다 결국 지치고 억울해서 죽는다. 한 마디로 ‘을’의 얘기다.
억울하게 죽은 주인공은 귀신이 되어 동토의 거리를 떠돌며 사람들의 외투를 벗긴다. 고골이 소설에 귀신을 등장시켜 재미를 더했다면, 귀신들에게 사로잡혀 불행했던 화가도 있다. 프란시스 고야(1746-1828)가 그랬다.

지난달에 내셔날 아트 클럽(National Arts Club)에서 열렸던 고야의 특별전 ‘카프리초(Los Caprichos)’에서 보여주었듯이, 악몽도 그런 악몽의 세계가 없다. 80점의 판화를 보고 있자니 고야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완전히 잃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에칭은 그로테스크와 냉소의 극치다. 카프리초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43번째 그림에 있다. 제목은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출현한다.’다. 흰 옷을 입은 청년이 의자에서 잠든 사이 그의 등 뒤 어둠 속에서는 온갖 종류의 사나운 짐승들의 출몰하고 있다. 만화의 효시라는 이 판화들에는 사회 비판, 시대 비판, 종교 비판, 나아가서 인간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까지 다 들어 있다.


고야가 이런 식의 그림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초상화도 있고 종교화도 있다. 그러다가 ‘1808년 5월 3일’같은 학살의 현장이 등장하고, 말년에는 자기 집 벽을 온통 ‘검은 그림들’로 도배하고 만다. 열병으로 귀가 멀어서, 라고 하지만, 그의 어둠의 깊이가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종교나 사람에 희망을 걸었다가 실망해 종당에는 그 어느 것도 믿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홀로 어둠의 심연으로 실족해 들어간 것 같다.

그가 처음 모신 왕은 카를로스 3세(1716-1788)였다. 카를로스 3세는 ‘계몽된 군주’였다. 그는 사회개혁에 힘쓰고 지나친 종교재판을 막았다. 고야는 유럽을 휩쓸던 이 ‘계몽주의’에 매료되었고, 계몽군주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카를로스 3세가 죽자 그의 뒤를 이은 카를로스 4세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렸다. 그는 부인에게 정치를 맡기고는 자신은 사냥만 즐겼다. 이 때 제작된 것이 ‘변덕’을 뜻하는 ‘카프리초’다. 화가는 이러한 사회고발을 통해 그릇된 인간사를 일깨우며 사람들을 다시 계몽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희망은 혁명을 성공시킨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에 들어올 때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자기 형을 스페인의 왕으로 앉히면서 레지스탕스들을 대량 학살하자 그는 이를 그림으로 증언하고는 인간과 종교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믿음과 희망이 사라진 곳에 괴기와 광기의 골짜기가 있었다. 그 속에서 빛을 비추고 있어야 할 종교는 너무도 지상으로, 그리고 그 너머 천상으로만 눈높이를 올리고 있어서 이제 그곳에는 다만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치룬 절망으로부터 우리에게 도달하는 메시지가 있다. 인간성도 종교도 썩 기댈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건 이제 자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꿈이, 그리고 이상주의가 그래도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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