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의 복

2015-02-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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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다. 지난 한달 동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덕담도 많이 주고받았다. 나이 수만큼 들어온 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5년 1월 둘째 날부터 난 새해를 ‘대상포진(shingles)’과 함께 맞이했다. 새해부터 원치 않는 질병에 새해 덕담이 무색해 진다. 날이 추워지면서 들었다 나왔다 하는 감기 끝에 면역체계가 약해졌는지 결국엔 대상포진이 찾아왔다.

왼쪽 등 아래쪽이 슬금슬금 가렵더니, 바늘로 찌르듯이 쑤셔댔다. 처음엔 피부가 건조해져서 그러려니 했는데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가 보자마자 shingles 이란다.

‘새해부터 이게 뭐람’ 어두운 마음이 스물 스물 올라왔다. 건강하게 새해를 맞이해도 흐지부지 되는 게 사람일인데, 새해부터 앓기나 하고 심기가 불편해진다. 초기에 대응해야 병을 잡을 수 있다 해서 약 먹고 쉬고 약 먹고 쉬고, 나의 주부 역할은 일단정지 상태가 되었다.


무조건 쉬라고 하니……. 한 번도 밥 해 본적 없는 남편이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하고 상을 차려준다.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는 와서 요리도 해주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 주었다. 남편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내가 아프다는 말을 하고 다녔는지 어느 날 우리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 초인종을 누르고 국화꽃 한 다발을 내밀었다. 빨리 낫기를 기도한다는 말과 함께.

이뿐만이 아니다. 평소에도 잘 챙겨주시지만 아프다고 하니 레슨을 받는 학생의 어머니는 그리운 엄마의 식탁을 선물로 주셨다. 보글보글 구수한 된장찌개와 각 종류의 김치가 한상 가득한 정겨운 밥상은 몸이 아프니 더욱 귀하게 여겨졌다.

먼 나라에 있기에 챙겨주지 못하는 친정어머니는 새댁 살림 소꿉놀이에 힘든 일이 뭐 있다고 아프냐면서 타박을 하셨지만 전화를 끊고 난 후 가슴속에 남아있는 온기가 끝내 눈물 한 방울 되어 떨어진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예비 되었던 것처럼 사랑을 느낄만한 일들이 새록새록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더 이상 shingles는 내게 예상치 못한 안쓰러운 일이 아니었다. 난 ‘새해 복’ 많이 받고 있었다.

순간순간 감사한 마음이 드니 몸의 통증 또한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동안 복이란 것에 대한 생각의 그림이 잘못 그려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원치 않는 상황 속에서 자유함을 배우고 감사를 느끼고 즐길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이 아닐까?

이혜진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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