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셀카가 뭐길래

2015-0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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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3일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국가교통안전위원회가 지난 주 발표한 사고 조사보고서를 보도했다.작년 5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발생한 경비행기 추락 사고의 원인이 조종사의 셀카 때문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조종사와 조수석 탑승자가 모두 사망한 추락현장에서 발견된 비디오카메라를 통해 그들이 비행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촬영해 온 사실을 알게 됐다. 보고서는 사고 당일 비행 중 휴대전화 사용이 조종사의 주의를 산만하게 했고 이것이 방향 감각과 통제력 상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셀카가 뭐길래’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것인지. 얼마 전에는 중국의 한 병원에서 수술 중인 의료진들이 단체로 셀카를 찍었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는 분초를 다투어 시술해야 하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복과 마스크 차림으로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고 있는 사진에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뭐, 셀카 좋아하는데는 세계적인 지도자들도 못 말린다.

작년 12월 10일 넬슨 만달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장에서 헬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세 사람이 당시 식장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활짝 웃으면서 셀카를 찍었고 이 사진은 전세계로 퍼졌다.

엄숙해야 할 자리에서, 특히 덴마크 총리와 미 대통령이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그 옆의 영국 총리는 자신의 얼굴이 안 나올까 두사람 쪽으로 얼굴을 기울인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사실 우리 주위에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아침을 먹으며, 외출준비를 한 다음, 일을 하면서, 저녁에 친구를 만나서, 잠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20~30대 젊은 나이일수록 직접 통화보다는 사진 한 장 틱 보내어 상황 설명을 끝내는 ‘메세지 시대’이긴 한다. 나름의 소통방식이겠지만 식당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셀카를 찍는 것에는 거부감이 든다.

먹음직스런 요리를 앞에 놓고 막 먹으려는데 “아, 잠깐 잠깐”하며 셀카를 들이대면 잠시 기다리는 동안 음식은 식어버리고 사진 촬영 후 먹으려면 이미 식욕이 달아나 있다.먹는 것뿐만 아니라 예쁜 옷이나 멋진 풍경을 보면 우선 먹고 입어보고 풍경을 눈으로 즐기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요즘은 무조건 셀카부터다. 어떤 모임에서 억지로 같이 찍힌 사진을 셀카 주인 마음대로 자신의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에 올려 다른 이에게 전달까지 하면 정말 난감하다.


셀카를 수시로 찍는 사람일수록 주목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에 틀림없다. 남들에게 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다, 우리 가족 유럽여행 왔다, 스키 타러 와 있다는 등등 자기 과시로 이용될 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은 상처를 받게 되고 결국은 사회적 위화감까지 조성하게 된다. 네티즌들이 “좋아요”, “부러워요” 하는 한마디 말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당신, 그대의 삶에는 진정 좋은 일만 생기나요 하고 묻고 싶다.

한사람의 인생에는 넘어가야 할 산, 건너가야 할 강이 많다. 때로 환하게 웃어본 적이 언젠가 싶게 삶이 힘들고 지칠 때도 있을 것이다. 절망하고 좌절할 때일수록 더더욱 SNS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행복하다고 착각하고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다가 물에 빠져죽었다. 자신에게 너무 빠져들지 말라. SNS는 적당히 하고 메시지 상대를 직접 만나 밥 먹고 수다 떨고 같이 놀면서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셀카 속 웃음이 진짜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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