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적선공덕(積善功德)”

2015-02-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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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어느덧 2월이다.
눈이 내린다. 날씨는 춥다. 땅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한파는 계속 밀려온다. 며칠 남지 않은 입춘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새벽은 가까이 다가온다. 겨울도 깊어가고 있으니 봄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성큼 다가오지 않겠는가?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코앞이다. 2월4일이니 이틀 남았다.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날이다. 곧 봄소식이 오겠다. 입춘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인다고 한다.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도 깨어난다. 물고기는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 그러니 꽃잎하나 걸치지 않고 당당히 눈보라를 맞던 나무들도 새싹 틔울 준비가 한창일 게다. 절기상으로는 올 겨울도 다 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아직은 추위가 매섭다. 봄의 기지개를 펴기에는 너무 빠른가 보다.


올 뉴욕의 입춘에는 눈이 온다고 한다. 한파도 이어질 것으로 예보되어 있다. 그러니 봄이 시작돼도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일뿐이다.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은 예로부터 설과 같이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 중 봄은 새로운 시작이고, 겨울의 마침을 한 해의 끝으로 보기 때문이다. 입춘 전날은 절분이라 하며 이것을 ‘해넘이’라고도 하여 철의 마지막을 뜻하기에 그렇다.

입춘에는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해마다 입춘 날에 대체로 복이 들어오라는 의미에서 입춘방을 써서 붙이는 풍속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글귀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다. 봄을 맞아 크게 길하다는 뜻으로, 운수대통하길 기원하는 덕담이다. 또한 새해에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하는 ‘건양다경(建陽多慶)’도 있다. 부모는 천년 장수하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기를 기원하는 글귀는 부모천년수 자손만대(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다.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는 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는 기원이다.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는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는 뜻이다. 거천재 래백복(去千災 來百福)는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는 뜻의 기원이었던 것이다. 이는 조상들의 한 해의 액을 멀리하고 행운을 가까이 하고자하는 지극정성의 마음가짐이 담긴 것이 아닌가 싶다.

입춘 날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민속도 있었다. 이를테면 밤중에 몰래 냇가에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 일 아름다운 풍속이다. 또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다른 사람이 다니기 편하게 해 놓기도 했다. 다리 밑 동냥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일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집 앞에 약탕을 끓여 몰래 놓고 오는 등의 미풍양속이다. 이런 적선의 원칙은 기독교의 성서에서도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상엿소리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입춘 날 절기 좋은 철에/헐벗은 이웃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하였는가/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이는 죽어서까지도 염라대왕으로부터 입춘 적선공덕을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는 아름다운 풍속이다. 이처럼 입춘은 본디 복을 기원하는 것보다는 선행으로 공덕을 짓는 날이란 의미를 더 크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선은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 선행을 쌓는 일이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적선은 산더미 같은 눈도 한나절 햇빛에 다 녹듯이 빨리 없어진다. 하지만 남모르게 하는 적선은 뿌리 깊게 내려 자손만대로 열매 맺고 꽃피워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고 한다.

단 하루만이라도 적선공덕을 실천하면 액을 면한다는 입춘이 며칠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입춘에는 입춘대길만 기원하기 보다는 선행으로 공덕을 짓는, 무슨 좋은 일을 할 게 없나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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