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선한 말 한마디

2015-01-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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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며 느끼며

스마트폰에서 가장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날씨이다. 날씨에 따라 다음날 옷을 두껍게 입거나 얇게 입고 때로 우산을 준비하게 된다.

한국에서 살 때 TV에서 날씨 예보를 본 기억이 난다. 사건사고 뉴스 뒤에 다음날 날씨를 전하는 시간이 되면 키가 커 보이는 한 통보관이 나와서 늘 똑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내일은 맑다’ 혹은 ‘비가 온다’는 예보를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한국의 기상청 예보는 어찌나 자주 틀리는 지 ‘기상청 직원들이 푸른 가을 하늘아래 체육대회를 하다가 비가 와서 취소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작년 10월10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윈회의 기상청 국정감사에서는 날씨 예보의 부정확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한국은 산이 많은 지형이라 날씨 변동이 빈번하다, 지구 온난화가 이상기후를 야기하여 날씨 예측이 어렵다, 실력이 모자란다, 장비가 낙후하다 등등 여러 원인이 제기되었었다.
미국의 기상청은 ‘내일 비가 온다’ 거나 ‘눈이 온다’고 하면 대체로 맞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 26일 동북부 지역 ‘기록적인 최악의 눈폭풍’을 예보했던 미기상청(NWS)의 체면이 완전구겨졌다.
‘강풍을 동반한 최고 1미터 안팎의 눈폭풍’으로 예보되었으나 실제 온 눈은 25센치미터 미만이었다. 예상보다 적은 강설량을 보이면서 각 주정부들이 과잉대응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터져 나왔다. 뉴욕뉴저지 등 8개주는 비상상황을 선포했고 26일 저녁 11시부터 응급차량을 제외한 전면 차량통행금지가 실시되었고 110년만에 뉴욕 지하철 운행도 중단되었다. 이번 눈폭풍 예보에 일반대중들은 여러 가지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본인 역시 오전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27일 아침 주차장에서 차 빼기가 쉽지 않아 버스도, 전철도 없는 거리를 30분 이상 걸어 출근해야 했다. 집이 직장과 가까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말에 보스턴 지역에서 놀러온 조카는 25일 낮 일찌감치 눈이 오기 전에 뉴욕을 떠나게 했고 가족 중 한사람은 서부지역에 있었는데 눈폭풍 예보를 만나 27일 새벽 도착 예정인 비행기 스케줄을 27일 밤으로 조정해야 했다.

눈폭풍은 예상보다 훨씬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뉴욕지역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으나 롱아일랜드, 커네티컷 일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폭설이 내렸다.

미 기상청의 고위급 기상예보관 게리 차코우스키는 27일 0시44분쯤 트위터에 “정치인과 일반대중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 며 “여러분은 우리의 예보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결정들을 했는데 우리가 틀렸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이 예보관의 글이 게시된 후 각 주요방송사의 기상예보관들도 잇달아 예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댓글을 올렸다.

기상청의 사과 한마디가 참으로 신선하게 들렸다.

‘잘못했으니 잘못했다고 한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잘못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신이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도, 듣기도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미안하다’ 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풀리는 걸 알아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용기가 없어 망설이고 생략했다가 일을 더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 한마디를 안 한 탓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먼 거리가 생기고 종내 더 큰 오해와 갈등을 불러오기도 한다. 사실 눈 폭풍이 그만하기 천만다행이다. 눈이 조금 온다고 했는데 예보보다 더 큰 폭설이 내린다면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얼마나 난감하고 혼란스러울 것인가. 기상청의 “미안해요” 이 한마디에 우리들은 “괜찮아요” 하고 나이스한 대답이 절로 나갈 것이다.


민병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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