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설심보 (雪心譜)

2015-0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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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속에서 그 할머니의 차(車)위의 눈(雪)을 치워주는 일은 기쁜 일이었고, 그렇게 시작한 그 날은 온 종일 즐거웠다. 내 차(車)의 옆자리에 주차하는 나이 들고 허리가 꾸부러진 미국 할머니는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어딘가를 다녀오곤 하였다. 눈이 많이 내린 새벽이면 나는 교회(새벽기도회)에 가기 위해서 내 차위의 눈을 치우면서 그 할머니 차 위의 눈도 치워주곤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어딘가를 다녀오곤 하는 그 할머니는 매우 답답해 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어느 눈이 많이 내린 날, 새벽에 나는 내 차 위의 눈을 다 치운 다음, 그 할머니 차 위의 눈도 쳐 주고 있었다. 눈을 치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등에서 땀이 나고 허리도 아팠다.

허리를 펴고 일어나는 순간, “이 일이 누군가에 들켰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렇게 눈을 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 아내가 미리 나가서 눈을 치고 있는 빼빼 남편을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종종 아내가 내려다보곤 하는 거실 창문 쪽을 올려다보았다. 아내가 이것을 보면 가상히 여길 것 같은 생각이 나서였다. 그러나 거기에도 이 자부심에 찬 나를 내려다보는 눈길은 없었다.


나는 눈삽을 벽에 기대놓으면서 창문 다른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랬더니 아내는 그 쪽에서 커튼을 살짝 젖히고 나를 훔쳐보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위를 올려다보는 것을 보더니 아내는 이제 까지 조끔 젖히고 있던 커튼을 활짝 젖히니 하얀 이빨을 보이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결국 나는 들키고 있는 것이었다. 남모르게 하는 적은 선행의 동기(動機)가 칭찬 받고 싶어 하는 도심(盜心)으로 전이(轉移)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적은 선행이 누군가에 들키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속에 싹트고 있는 것을 깨닫는 순간, 십자가를 지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이슬같이 눈물 진 내 눈의 망막에 떠올랐다.

이슬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얼룩진 나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붉은 피를 흘리고 계시었다. 아직도 들키기를 기대하는 설교자 남편과 열(烈, 아내의 애칭)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영적 엔돌핀에 감사하며 현장을 떠나 속히 교회로 갔다.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우리 내외는 가까이에 있는 Shop Rite의 베이커리 코너에 아침 빵을 먹으러 갔다. 근처에는 다이너도 있고, 잘 단장한 빵집도 있었으나 Shop Rite Corner Deli는 시골 장터 같은 서민풍(庶民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아내는 크로아상 3개와 커피 2잔을 뽑아가지고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그때 마침, 나이 들고 허름한 한국 노인 한분이 들어와 커피 한잔을 뽑더니 냅킨을 한주먹 움켜 뽑아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 것이었다. 참 보기가 민망하였다.
“ 저 할아버지 좀 봐.., 커피 한 잔에 냅킨 한두 장이면 될 것을. 저렇게 하면 남의 것을 훔치는 거나 다름없는데 ...”

나는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옆에 같이 앉았던 아내는 “ 저 할아버지, 아침 이른 시간에 속도 비었을 텐데 왜 커피만 드실까? 빵 살돈이 안 되는 모양이지 ....”
나는 노인의 행동을 율법의 눈으로 보았는데, 맵게 생활해온 아내는 그 노인의 정경(情景)을 애린(愛隣)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잘못된 행동을 율법으로 보는 설교자의 눈보다는 한 인간을 애린으로 보는 눈이 더 아름다웠다.

나는 금방 동감하고 아내에게 ”저 할아버지 우리 테이블로 모시고 오시오.“라고 제의 하였다. 오늘 창밖을 내어다 보니 어제 밤사이에 눈이 많이 내려 있었다. 온 세계가 흰 눈으로 덮여 이었고 주차장에 가보니 차들은 고구마처럼 눈에 묻혀 있었다. 늘 지저분하기만 하던 내 차의 모습은 볼 수 없이 흰 눈으로 덮여, 흰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는 눈을 칠 기력도 없지만 눈이 태양 볕에 녹아내리면 차(車)의 지저분한 모습은 다시 드러날 것이다. 더럽고 지저분한 차는 흰 눈으로 덮을 것이 아니라 닦아내야 할 것이다. 눈으로 덮을 것이 아니라 닦아내야 한다.

내 마음에 다가오던 도심(盜心)은 닦아 낼 것이 아니라 깎아내야 한다. 내가 남에게 들켜지기를 기대하고 칭찬받기를 바라던 마음을 숨기고 했던 선행이 얼마나 될까? 탈 율법(脫 律法)적인 자기 개혁은 세상을 덮는 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른 아침에 내린 서설(瑞雪)의 설심(雪心)에서 배운다.

주진경<은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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