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의 양치는 언덕

2015-01-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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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수필가)

을미년(乙未年), 푸른 양띠해의 날들이 활기찰 것이란 기대가 된다. 양은 온순한 동물이나 고집이 세고 난관을 당해도 피하지 않고 돌파한다. 가던 길로 반드시 되돌아오는 정직성과 정의의 상징이다.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가 쓴, 양과 관련된 단편소설 ‘별’에는 맑은 영혼의 양치기 소년이 나온다. 밤하늘의 별들을 벗하며 양떼를 지키는 목동의 순결하고 성스러운 사랑. 어깨에 기대어 잠든 주인아가씨의 얼굴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별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의 이솝우화 ‘거짓말 소년’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은 심심할 때마다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외친다. 마을 사람들은 연장과 몽둥이를 들고 달려 나왔으나 늑대는 없었다. 어느 날, 진짜로 늑대가 나타나서 양치기 소년은 또 소리쳤으나 마을 사람들은 나와 주지 않았다. 소년의 양들은 늑대에게 죽임을 당했다. 목동의 충격은 컸을 것이고, 그대로 성장한다면 반사회성 인격 장애인이 되지 않았을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소금 같은 인간과 부패하는 인간이다. 이 두 유형은 두 양치기 소년의 상황과 비슷한 심리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25년 동안 소시오패스(Sociopath)에 대해 연구한 심리학자 ‘마샤 스타우트‘는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라는 책에서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4%, 25명중 한 명꼴로 “우리의 일상 속에 늘 함께 있는 이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국의 경우 40% 이상이 소시오패스 증후군자들이며 사회의 상류층 인사나 유능한 직업인들 중에 많다. 그들은 성공과 목적달성을 위해 친구나 동료 사이의 이간으로 갈등을 일으키거나 뒤로 조작 하는 등, 타인을 이용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들통이 나도 동정심에 호소한다. 두뇌가 뛰어나 거짓말을 잘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만 미안해하거나 보상하려는 생각이 없다. 이들은 범죄적인 재능을 타고 났거나 후천적인 충격에 의한 발현이다. 이들이 무서운 이유는 파렴치한 짓을 하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증거를 보여줘도 뉘우치지 않으며, 오히려 공격적인 태도로 돌변한다.

모르고 속는 것도 죄라고 했다. 평소에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친절한 이들에게 받는 상처는 어마어마한 참사로 남게 될 것이 뻔하다. 나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나의 동정, 연민, 사랑 등이 상대의 부패를 도와주고 있다면 어찌될 것인가. 소금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부패된 사람 곁에서 같이 썩어 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신성한 어머니의 뱃속 양수에서 열 달을 견디고 살아남은 영웅들이다. 그런 ‘나’는 소금 같은 의인(義人)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우리는 양띠해의 언덕에 오른 양치기 소년들이다. 양떼를 온전하게 지키려면 푸른 초원 저편까지 시야를 넓혀 바라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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