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의 블랙홀

2015-01-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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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사로잡은 비전은 사람마다 그 꿈을 실현하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인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나라 미국을 찾아 아메리칸 드림에 도달하기 위한 미래를 꿈꾸었다.

미국이 세계 초 일류국가가 된 데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 종교를 포용한 것이 주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공질서 및 법규에 대한 이 나라 시민들의 높은 의식수준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늘날 한국도 미국과는 여전히 비교가 안 되지만 그래도 지구촌의 많은 나라에서 방문과 취업, 이민의 꿈을 갖고 한국을 찾아드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만도 150만 명에 달하는 실정이다.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지역의 사람들로부터 정부 정책, 사회 간접자본, 기술과 사업 관행 등에서 뛰어난 한국을 동경하면서 나온 결과다. 그야말로 이제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확실하게 지구촌 성장모델이 되었다. 한류문화와 성형수술, 패션 등은 지구촌 젊은이들로부터 크게 각광을 받고 있고 최첨단기기, 선박, 자동차산업 등의 세계시장 석권은 한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의식은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다. 지난해는 어린 학생들을 포함 300여명이 졸지에 바다에 수장된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더니, 새해 들어서는 대한항공의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한 가장의 일가족 집단 살해극,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러운 사건들로 보기만 해도 힘에 겹다.

이는 모두 미국의 CNN과 뉴욕타임스에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국민소득의 증가, 경제대국 12위권, 문화, 스포츠까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인가!

한국에서 26년간 살면서 한국인에 대한 비판을 ‘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한 일본인의 말이다. 한마디로 경제는 1만 달러인데 의식은 100달러라는 것. 그의 지적은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문제, 한국어머니들의 자녀 과잉보호, 강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방목하며 키우는 자녀교육, 적당주의, 냄비문화, 상습적인 교통신호 위반 등이다. 그는 ‘과연 이 나라가 사람 사는 곳인가?’ 할 정도로 선천적인 질서의식의 결핍증을 꼬집으며 한국인의 도덕수준이 일본보다 100년이나 뒤졌다고 개탄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성공하고 축복받고 잘 살게는 되었지만 그 이면을 집어삼킨 블랙홀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드러나는 도덕 윤리의 불감증이었다. 세계 1위의 음주율, 이혼율, 자살률은 모두 이것이 요인이다. 개개인이 바른 의식으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결과다. 이대로는 한국의 미래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지금 세계는 대한민국에 주목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학을 전공한 하버드대 석학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대한민국의 현실을 통찰하고 던진 한마디다.
그는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저서에서 한국은 국가브랜드로 홍보하고 알릴 수 있는 엄청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데 좋은 예절이나 전통이 잠들어 있다. 즉 한국전통의 ‘홍익인간(弘益人間)’ 같은 사상이 실종돼 있다는 것이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말한다. “21세기 르네상스가 한국에서 꽃피는 상황이 생긴다 하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은 그런 잠재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청난 보물을 놓치지 않으려면 그 해답은 자명하다. 문제의 그 고질병을 반드시 치유하는 일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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