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가 사회를 말해주는데…

2015-01-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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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인 <대학강사>

30년 전 어느 예언가가 한국이 동양의 파리가 될 것이라 말한 것을 기억한다. 참으로 이상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미국에 오는 사람들은 외제물건 샤핑에 혈안이 되어 물건을 고르다가 생산지를 보면서 Made in Korea 라고 되어있었다.

60년대 ‘우리도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중공업 발전에 이어 디지털 선진국으로 그 위상을 높이더니 정말 이제는 한류의 바람을 타고 한국의 드라마가 동남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열풍을 몰고 있다.
유행의 토네이도 중심에 한국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30년 전에 누군들 예측하고 있었겠는가?


하긴 가만히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한민족은 농사를 짓는 동안에 농부는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았겠지만 사,농, 공, 상의 위계질서 속에서 사회의 진출과 밥줄이 오로지 공부하는 것에 매달려 있던 양반계층은 하는 일이 공부 그리고는 노는 것이 일인데 좋게 이야기해서 풍류를 즐겼고 그냥 막말로 하면 한량이라고 할 것이다. 이조 오백년 역사 동안 이러한 문화는 우리 몸속에 분자 같은 기억 (molecular memory)으로 저장되어 알게 모르게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힘이 저장되어 있었을 법하다.

미국에 있어도 한국방송은 끝나자마자 30분 내로 업로드 되어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미국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요사이는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 콘텐츠를 보면 이곳의 것과는 달리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거의 모든 드라마의 배역이 부모의 배경을 안고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마마보이, 버릇없는 부잣집 딸, 가난 혹은 평범한 집의 효녀, 집안의 배경이 변변치 못한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한국특유의 고부간 갈등, 부잣집 여자와 개천에서 난 용의 만남, 그리고 가족관계를 가지고 지나친 우연성을 남발하는 어눌함.

여기의 공통점은 남녀가 만나는데 반드시 그 집안의 어르신들이 등장 혹은 관련 되면서 그들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의 씨앗을 던지기 위해 마련하는 각본들이지만 없지 않아 실제로 한국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서 드라마는 이런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의 머릿속에 입력을 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실제의 사회와 환상의 세계가 서로 보강작용을 하면서 그 사회 특유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또 유지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전 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사회에서 재벌가의 기업 경영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 가운데서 땅콩회항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콘텐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건강한 시민이 되는지를 배울 수 없는 정말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살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이 모두 드림을 성취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의 문화 콘텐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왜? 그것이 이 나라가 세워진 근본이었고 또 역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기본인 기업정신(entrepreneurial spirit)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밖에 다른 내용들도 많다. 그러나 가족이 연결된 경우는 보통 휴머니티(humanity )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지 그것이 빌미가 되어 개인이 추구하는 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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