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방인

2015-01-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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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뉴스를 보면 MBC예능프로 ‘무한도전’의 ‘토토가’가 엄청난 화제이다. 재미로 시작된 작은 기획이 복고 바람이 더해지며 90년대 음악인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 조성모의 ‘To heaven’ 등이 음원 차트를 강타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토토가’가 무엇이길래 이 난리인가 싶어 아이패드로 ‘토토가’를 찾아들어가 주말동안 보았다.그룹 터보, 원조 걸그룹 세스, 지누션, 쿨, 엄정화, 소찬휘, 이정현 등 90년대 인기 절정이던 가수들이 데뷔당시의 의상과 콘셉으로, 관객들은 90년대 유행 패션을 입고 가수들과 함께 춤을 추고 환성을 지르며 다 같이 한판 잘 놀고있었다. 사람들은 이 프로로 인해 과거 히트곡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고 최근까지 맹활약하던 아이돌 음악이 주춤한 상태라고 한다.

불과 15~20년 전으로 돌아가는 복고바람이 대중음악계를 넘어 관련 사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15~20년 전에 이민 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싶다.


작년에 히트 쳤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있다. 이 드라마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와 신촌하숙집에 모여사는 스무살 대학생들의 삶과 사랑, 꿈을 그려 출연한 무명배우들을 대스타로 만들었다. 대학농구와 서태지와 아이들, 삐삐 등에 열광하던 X세대 문화를 다루면서 90년대 향수를 불러일으킨 이 드라마는 어느 세대나 젊은 시절에 겪는 고뇌와 방황, 사랑을 다루었기에 공감대가 많았다.

이번 ‘토토가’는 90년대 유행한 대중가요와 춤, 패션, 사회 분위기를 다루었는데 오래전 이민 온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절에 그곳에 없었고 그 노래와 얽힌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대중가요라는 것이 삶의 애환을 묘사하고 자신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주위, 이웃의 사연이 깃든 장소, 그곳에서 듣던 노래와 추억이 같이 가기 때문이다.
왜 토토가 관객들처럼 함께 춤추고 흔들기에는 몸과 마음이 안따라주는지,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이렇게 한국과 멀리 떨어져 점점 영원한 이방인이 되는 것인가 싶어 약간 씁쓸하다.

2010년에 MBC 오락프로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의 ‘세시봉 친구들’ 프로에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4명이 통기타를 치면서 ‘Cotten Field’ 노래를 시작하자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눈물을 훔치며 열띈 반응을 했었다. 감칠맛 나는 입담과 함께 옛 노래들을 불러 오래전에 이민 온 재미한인들도 열광하며 녹화된 CD를 친구, 동료간에 돌려가며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한국은 복고풍 열풍으로 떠들썩했었고 아직까지 7080 콘서트가 뉴욕에서 열릴 정도다.

70, 80년대에 한국에 있었던 뉴욕 이민자들에게 그 시절, 그 노래에 얽힌 추억이 다들 한보따리가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가슴앓이 하며 듣던 노래 한 곡은 있게 마련인데 미국에 사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한국의 1990 복고열풍’ 같은 새로운 문화 트렌드가 낯설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생활이 익숙해질수록 무엇이 유행이다 싶으면 아파트 평수, 실내 인테리어, 옷차림과 명품백,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심지어 몸짱 만들기까지 똑같이 따라하는 그 단순성, 몰입성, 몰개성이 겁도 나고 거리감도 생긴다.과연, 뉴욕에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되새길 추억은 없는가.

친구들과 함께 한 바비큐 파티, 가족들과 함께 여행한 디즈니랜드, 이민 동기생이 모인 추수감사절이나 핼로윈 파티, 래디오 시티홀의 크리스마스 파티, 타임스퀘어에서 울려 퍼지던 ‘뉴욕 뉴욕 뉴욕’ 노래와 함께 웃고 즐기던 플러싱과 맨하탄 거리 곳곳에 우리의 추억이 널려 있다. 다만 발견을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이다.
미국에 살면서 늘 자신이 이방인이라 생각했던 이들은 한국에 가면 또 자신이 ‘이방인’일 것이다. 우리가 뿌리 내릴 곳은, 사랑할 곳은, 지금 여기인데 우리는 가끔 그걸 잊고 산다.

민병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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