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증오의 씨앗

2015-01-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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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가 왜 이처럼 많은 유대인을 죽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단지 히틀러가 내세운 반 유대주의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 이유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회자되곤 한다. 심지어 프로이드 심리학까지 거론되고 어머니가 어느 유대인의 정부였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돈다. 어쨌든 히틀러가 저지른 전대미문의 끔찍한 만행은 극단적인 증오감에서 비롯됐다.

지금 아름다운 나라, 선망의 도시 프랑스 파리 시내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만행으로 피로 물들어있다. 이 역시 극단적인 증오심이 부른 일종의 성전이자 복수극이다.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 예언자 무하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실었다 해서 풍자만화 주간지 사를리 엡도에 쳐들어가 무차별 총격을 가해 12명을 숨지게 하고 8명을 부상시켰다.

이들의 만행에 전 세계가 경악하면서 이들을 규탄하는 반테러시위에 프랑스 국민 70만 명과 함께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동참하고 나섰다. 이 사건은 새해 들어서자마자 한창 기쁨에 젖어있던 미국의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세계 경제중심이자 관광도시인 뉴욕시민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100만 명이나 되는 뉴요커들이 흥분에 들떠 맨하탄 타임스퀘어에서 ‘뉴욕 뉴욕’ 소리치며 망년을 자축하고 새해를 맞은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이런 테러소식을 듣게 되니 모두가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 알카에다의 끔찍한 무차별 테러공격을 당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소규모의 9.11같은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하니 불안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빈 라덴의 사주를 받은 자폭 테러범들이 저지른 만행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유명을 달리했는가. 그 때 받은 상처는 지금도 미국민의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언제나 이런 끔찍한 테러가 종식될 것인가. 지구촌은 가면 갈수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무기에는 무기만이 반복될 뿐이다. 그 강성했던 로마제국은 합심해서 쳐들어온 야만인과 노예들에 의해 포위되었다. 로마인들은 노예를 그리스도교의 동포라고 부르면서도 해방시키려고는 하지 않았다. 노예에게는 천국을 약속하고 지상의 나라는 여전히 권력자들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그리고 야만인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했다. 야만인도 노예도 그들에게는 인간이하의 존재였다. 결국 로마는 노예제도에 의해 번영했지만 증오심에 가득 찬 노예들에 의해 붕괴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약소국가 혹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 종교나 문화에 대한 무시나 조롱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종교, 문화가 또 다른 종교, 이민족의 문화를 포용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면 끔찍한 테러의 원인이 되는 증오감은 더 이상 싹트지 않을 것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이번 아시아 방문에서 종교 마찰을 빚고 있는 국가간에 화해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한다. 관용과 배려, 협력과 공존으로 더 이상 지구촌을 피로 물들이는 테러는 없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무고한 시민을 무참하게 살해한 테러범들의 잔혹한 범죄는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전체 이슬람이 배타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증오와 대결이 있는 한 지구촌의 평화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잔인한 피를 부르고 복수의 총소리만 요란하다. 끊이지 않는 테러로 지구촌이 또 다시 피로 얼룩질까 두렵다. 증오는 더 큰 증오를 낳을 뿐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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