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는 기술. 쓰는 예술

2015-01-12 (월)
크게 작게
연창흠(논설위원)

새해 덕담은 ‘돈’이 우세다. 예전의 ‘건강, 행복’이 밀렸다. “건강하고 행복 하세요”보다 “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라는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돈, 돈, 돈’이 먼저다.

오랜 불황이 사람을 망치나보다. 지치고 지치다 못해 ‘돈타령’이다. ‘부자 되세요’가 서슴없이 나온다. ‘대박’을 아무 데나 놓고 쓴다. 대박이 뭔가?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행운이나 요행이다. 복권을 찍는 이들은 넘쳐나고, 점집은 북적거린다. ‘돈벼락’을 바라는 발걸음이다. 참으로 ‘돈’만 바라보는 세상이다. 언제부터 행복보다 행운이나 요행이 우선이 됐을까?


불황의 늪에 사람들이 변한다. 벌지는 못하고 까먹는다고 걱정이다. 신세한탄과 한숨뿐이다. 빈주머니를 다시 채우려 돈만 쫓는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사람보다도 돈에 기웃거린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돈, 돈, 돈’이다. 오죽하면 그럴까?

돈 놓고, 돈 먹는 세상. 이곳저곳에서 넋두리가 들려온다. 장사 안 된다고 투덜투덜. 더는 못하겠다는 푸념소리. 이젠 쫄딱 망했다는 아우성들이다. 그래도 더러 버는 이들도 있다. 언제나 참 장사꾼(?)들은 있다. 경기도 안탄다. 불황에도 끄떡없다. 오히려 불황이 호황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돈’에 자유로울까? 천만의 말씀이다. 돈이란 없으면 없어서, 많으면 많을 대로 걱정인 것이다. 그래도 우리네는 없는 것보다 많아서 걱정하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흔히 불황일수록 장사보다는 직장생활이 낫다고 한다.
하루하루 일하면 꼬박꼬박 품삯(?)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사가 안 되는 업소들도 종업원 주급은 꼭 챙겨준다. 그러니 게으름 피지 말고 일만 열심히 하면 큰 걱정도 없다. 봉급이 적어도 직장이 있으면 다행이다. 월급마저 후하면 일할 맛도 난다. 불황엔 직장생활이 장사보다 나은 이유다.
평범한 직장인들은 알뜰살뜰 살 수 있다.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그럭저럭 돈에 찌들지 않게 살 수 있다. 물론, 많은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 꼬박꼬박 모아 부자 되기란 ‘꿈 깨!’다. ‘대박’나기는 시쳇말로 ‘깨몽!’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 그러니 ‘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의 새해 덕담을 들으면 참으로 떨떠름할 뿐이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첨지는 조선시대 중추부의 정삼품 벼슬이다. 민중의 해학이 번득인다. 돈이 있으면 불가능한 게 없다는 꼬집음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 ‘염라대왕도 돈이라면 한쪽 눈을 감는다’, ‘돈 준다면 호랑이 생 눈썹도 뽑아온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등도 돈의 부정적 힘을 여실히 깨우쳐 주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돈의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

돈은 부의 원천이다. 돈을 쫓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리다. 당연한 관행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황금만능주의에 잔뿌리가 닿아 있는 게 문제다. 많은 이들이 돈이 최고인줄 알고 살아간다는 얘기다. 언제부턴가 사람보다도 돈이 먼저다. 말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돈 때문에 자존심을 버린다. 인정도 메말라간다.

심지어 철면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가 되는 세상. 부자들은 돈으로 귀신을 부릴 수 있다고 믿는 세상. 결국 돈이 한 사람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악의 근원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에 있음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돈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한다. 훌륭한 예술작품이 영원히 남는 것처럼 돈도 좋은 곳에 쓰면 영원히 가치가 남게 된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에게는 ‘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처럼 돈을 버는 것보다는 돈을 쓰는 예술이 필요한지 모른다. 돈을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결국에는 돈도 잘 벌기 때문이다.

.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