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맥도날드 불매운동, 이제 관용으로 용서하자

2015-0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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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 (목사/ 칼럼니스트)

종업원이 고객에게 폭행을 하는 것은 많이 잘못된 일이다. 한인노인이 맥도날들에서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종업원에게 호통을 치자 종업원이 들고 있던 청소용 빗자루로 손목을 쳤다.

그런데 이 사건이 마무리된 듯 하더니 퀸즈한인회, 학부모회, 노인회 등이 요즈음 다시 맥도날드 불매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바로 빗자루 사건의 현장 촬영 CC-TV 비디오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현재 이름 있는 한인변호사가 맡아 진행하는 것 같다.

물론 무슨 일이든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거나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러나 ‘죄와 벌’의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실재사건을 소재로 쓴 인간 내면을 다른 명작 소설이다. 하숙생이 가난한 사람을 괴롭히는 악덕 하숙집 주인 할멈을 도끼로 살해한다.


악인의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그 청년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유형지에서 참된 죄와 벌의 의미를 깨닫는다. 오늘날 헌법이 규정하는 죄형법정주의와 대법원의 형량위원회는 이러한 죄와 벌의 형평성을 조정하기 위한 장치이다. 죄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 형량이 적절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장발장은 빵 한 개 훔친 죄로 인해 무기징역 형을 받게 된다. 법이 형평성을 잃은 구시대(앙샹 레짐)의 이야기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역사 중에 잘 이해가 안 되는 스토리가 있다.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옛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후에, 그가 아끼는 딸 디나가 그 마을 원주민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분노한 오빠들은 할례를 받으면 결혼을 시키겠다고 속인 후 그 마을 남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복수를 나쁘게 보시고 그 오빠들을 징계하신다. 여동생을 해한 자들을 벌한 오빠들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 아닌가? 영웅담으로 칭찬받을 일이 아닌가? 무엇이 잘못됐단 말인가? 오랫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다. 바로 형평성이 문제이다.

여동생이 강간당한 것은 분노할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복수로 마을사람 수백 명을 잔혹하게 죽이는 것은 죄에 대한 마땅한 벌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지나친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정당방위로 판결하지 않으셨다. 부모 입장에서는 처녀 딸을 강간한 범인을 말 그대로 찢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형법에 의하면 3년 형이 고작이다. 성적충동의 한번 실수로 인해 사형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죄형법정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맥도날드 사태도 정말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문한 게 늦게 나온다고 컴플레인 했다고 손님에게 빗자루를 들이대다니. 빗자루는 그런데 쓰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치우는데 쓰는 것이다. 불쾌한 일이지만 폭행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니고 경찰서에 갈만한 일도 안 되는 일상사로 본다면 서로 정중히 사과하고 끝날 수 있는 일상사이다.

그러므로 사과하고 끝날 불씨를 ‘비디오’ 증거가 나왔다고 다시 싸움을 시작해서 맥도날드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는 이미지에 충분한 벌과 손해를 보았다고 본다. 아직도 일하는 그 종업원을 이 겨울에 해고 시킨다고 분이 풀리겠는가? 한인동포 빵집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변호사가 나설 일이 아니라 악수하고 끝날 일이다.

법정소송이나 민족적 감정대립으로 확대되지 않기 바란다. 새해에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관용 (tolerance)’ 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 같다. 나는 가난하지만 변호사가 아니라 목사가 되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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