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년 해돋이

2015-01-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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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새해, 새달, 새날은 일 년에 하루 밖에 없으며, 금년은 2015년 정월 초하루가 바로 이 날이었다. 한국 뉴스를 보면서 부러웠던 것은 해돋이를 마중하려고 바닷가에 모여선 사람들을 볼 때였다.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새해 새날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마음이 있다. 한 나라와 한 개인의 역사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앞으로의 새 날들은 무게가 있다.

며칠 전 새해가 솟았다고 한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달라진 것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작년에 본 자연, 지역사회의 풍경, 이웃들과 거리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 가족...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데. 맞다. 바깥 풍경이나 이웃들에게서 새해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새해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가.


새해는 우리 마음에 있다. 바로 내 마음에 있다. 새해에는, 새해니까, 새해를, 새해는, 새해인데... 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새해를 만든다. 이러면 안 돼, 새해니까. 새해를 멋있게 살자. 새해는 이 일을 끝낼 거야, 이러면 안 되지, 새해를 맞이하였으니까... 등등은 바로 새해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바로 거기에 새해가 있다. 새해는 숨어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나와 함께 있다.

새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즉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말없이 감사하였지만, 지금은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한다. 이것은 하나의 변화이고 새로움이다. 전에는 부모님께 한 달에 한번쯤 전화를 하였지만, 새해가 되면서 일주일에 한번 전화를 하게 되었다면 이것도 하나의 변화이고 새로움이다.

이 연장선에서 전에는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새해가 되었으니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 같이 노는 시간을 늘리려고 생각한다면, 또 하나의 변화이고 새로움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일이 거의 내 자신에게 달렸으며, 새로움이 이에 따른다. 결국 새것을 바깥에서 찾기보다 내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결론에 달한다.

그런데 새해의 결심은 할 만한가. 글쎄? 이는 결심하는 내용에 따랐고, 누구의 결심인가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이다. 이 경우 설령 지키지 못하더라도 반성한 흔적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결과에 관계없이 새해의 결심은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지키지 못하는 결심이라도 되풀이하는 동안에 지킬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고 싶은 의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새해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한국문화 중에서 설맞이 풍습은 한국의 자랑스러움, 슬기로움을 가득 담고 있다. 조상께 인사하는 차례, 부모를 비롯한 웃어른께 인사하는 세배, 가족이나 친구와 즐기는 윷놀이, 모두가 함께 나누는 떡국... 등 잘 짜인 설날 풍습이다. 양력에 이를 실시 못하였다면, 돌아오는 음력이 또 하나의 기회이다. 양력, 음력설을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고 둘 다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음도 다행이다.

자녀들에게 주려는 한국문화교육은 책으로 배우거나, 학교에서 가르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가정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면서 깨닫게 하고, 익숙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녀들이 자식으로 이해하고, 몸에 익숙하게 되기를 바라는 한국문화 교육은 각 가정의 협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정과 학교가 협력하여서 우리 자녀들이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따르면서, 동서 문화를 소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자녀들은 다양한 문화를 즐길 것이다.

결국 내 자신이 만드는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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