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딱지(Ticket)

2015-01-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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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등록날짜가 지난 걸 모르고 무심히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게 잡혔다. 뒷 창에 갑자기 번쩍거리는 경찰차를 보고 설마 내차는 아니겠지 싶어 두리번거리며 보니 주위에 달리는 차라고는 나 밖에 없다. 부근에 학교가 있어 15마일 존(zone)인 것을 알기에 각별히 조심해서 20마일로 노상 다니는 길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속도를 내었나 덜컥하여 옆에 차를 세웠다.

다가온 경찰은 내 차의 등록날짜가 지났다고 하며 보험증서와 운전면허증을 내라고 한다. 등록증을 꺼내보니 이미 4월에 등록 날짜가 지났다. 운전 면허증은 지갑 안에 있는데 보험 증서가 없다. 본 기억도 없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는지…경찰은 차로 돌아가 컴퓨터를 두드리며 한없이 나를 기다리게 하더니 티켓 한 뭉치를 들고 와 내게 주고는 차에서 내리라고 한다. 티켓을 줄 것은 알았지만 차에서 내리라니… 이 보험 없는 차는 내가 운전 할 수 없으며 그리고 이미 토잉 차를 불렀단다.

“노우, 난 집에 가야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 울쌍을 하는 내게 누가 와서 너를 픽업해 달라고 하란다. 아무도 없다니까 집이 어디냐고 묻더니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핸들을 붙잡고 앉아서 안 내리겠다고 뻗쳐서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방금 잔칫집에서 산 음식 보따리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내게 중요한 물건 있으면 잊지 말고 챙기라고 선심을 쓰듯 말한다. 이 냄새나는 보따리들을 가지고 경찰차에 타고 가느니 십리길이라도 걸어가는 게 낫다. 마침 남편에게 연락이 되어 걸어가지는 않아도 되었다.

곧바로 온 토잉 트럭에 실리는 차는 어쩐지 불쌍한 것이 주인 잘못 만나 유배길 떠나는 피붙이 같이 가엾고 처량해 보인다. 그렇게 느닷없이 내차는 끌려가고 경찰은 그때까지 번쩍이던 깜빡이를 끄고(범인 잡는 일을 충분히 완료했음을 고하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반찬 보따리를 들고 데리러올 차를 기다리며 도로 옆에 서서 경찰이 쥐어준 서류뭉치들을 살펴보니 법원 출두서와 벌금 티켓과 처음 보는 종이쪽지가 몇 개가 된다. 졸지에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니 갑자기 풀리는 긴장감에 눈 위로 피로가 눈 쌓이듯 쌓인다.

저녁 후에 약속했던 중요모임은 계획과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펑크를 내버리고 나니 세상에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없는 듯 허망하다.

이튿날은 DMV에 가서 등록증을 바꾸고 보험증서를 받은 후 파출소에 가서 허가서를 받아가지고 알려주는 토잉센터에 가서 190달러를 내고 차를 찾았는데 하루 온종일이 걸렸다. 뻔히 눈뜨고 생돈 갈취당한 것 같아 분하기도 하지만 길가에서 강도를 만나 한대 얻어맞고 돈을 뺏긴 것보다 낫다고 마음을 달래며 그래도 하루 만에 다 해결된 것이 다행이다 마음을 돌린 것은 딴 도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정해진 날짜에 코트에 출두해야 하고 내야 할 벌금이 남아있지만 친구에게도 일깨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 위로를 삼으니 그리 황당하고 나쁘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고 자위해본다.

윤혜영(병원수퍼바이저/ 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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