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다리

2014-12-24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새 아침이 시작되면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새 날이 밝으면 손을 뻗어 누군가에게 전보다 더 가까이 닿으리라. 왜냐하면 인간에게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정을 놓치기 싫어서이다. 새 날이 밝으면 사랑의 인간이 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며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유심히 볼 것이다. 사랑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문단의 베스트셀러 1위로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저자 레오 부스깔리아 교수(남캘리포니아대학 교육학)가 한 말이다. 부르깔리아 교수는 인생의 신비로움을 찾아 세계각지를 돌아다닌 끝에 인간의 생에서 사랑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역설했다.


요즘 우리 현대인에게는 정서, 즉 사랑이 많이 모자란다. 학교나 가정, 사회가 모두 황폐해 있는 이유다. 세상이 너무 기계화되고 분주하게 돌아가다 보니 갈수록 서로간에 접촉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내 일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럼에도 이혼율은 점점 높아가고 가족은 풍지박산 나고 인간관계가 점점 의미를 잃어간다. 그 바람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조지워싱턴 브릿지에서의 투신자살자도 올해 18명으로 2009년에 비해 2배, 2008년에 비해 4배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극심한 경쟁으로 대학생들의 지난해 자살율도 한 통계결과 인구 10만명당 7.5명 꼴로 예년에 비해 더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청소년의 자살률도 점점 증가추세에 있다.

생활고로 자살한 한인들도 올해 14명이나 되고, 한인노인들의 빈곤함, 독거노인의 고독감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현실은 어느 때 보다도 서로간의 친밀도와 관심, 사랑이 절실한 시대임을 말해준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말한 대로 “우리는 모두 함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외로움으로 견딜 수 없는 지경이다.”

기독교는 ‘사랑’을 모토로 한 종교이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며 고통속에 죽어간 사실은 인류를 그만큼 사랑한 증거이다. 2000년전 기독교가 현세에까지 우리 생활에 녹아있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점 때문이다.

현재 뉴욕 및 뉴저지에는 한인교회가 약700개에 달하는 현실이다. 미주전체에도 캘리포니아 1300여개(전체중 315) 등을 포함, 4,000개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도 사랑이 어느 곳 보다 넘쳐야 할 교계가 오히려 사회보다 더 미움과 시기가 횡행하고 사회외부에서 울부짖는 빈자와 외로운 자에 대한 사랑의 손길을 제대로 기대하기가 어렵다.

연말을 보내면서 황량하게 메말라가는 한인가정과 사회, 배고픔과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교계와 우리 개개인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곳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인간 간에 벌어진 관계를 더 가깝게 결속시키는 `사랑의 다리’다.

사랑은 우리의 성숙에 대한 위대한 도전이고 각자의 가장 큰 희망이다. 우선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상대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서로간에 이해하고 용서할 일이 있으면 먼저 묶인 마음의 매듭부터 풀어야 할 일이다.
반 고흐는 말했다.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은 생전에 가능한 한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해가 저물어간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서로간의 사이에 사랑의 다리를 놓아 오해와 충돌로 끊어졌던 관계, 서운하고 서먹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 그리고 말끔한 기분으로 대망의 새해를 맞이하자.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