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둥지

2014-12-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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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용 / CPA·수필가

그리피스 천문대는 LA의 명소이다. 수억만리 떨어진 별들이 우리의 눈길을 기다리는 곳이다. 재수 좋은 밤이면 기다란 망원경으로 지구의 형제 같은 금성이나 화성도 볼 수 있다. 하늘의 별보다 더 신기한 것은 바다까지 보이는 수많은 불빛들이다. 천문대 아래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네온사인 사이로 취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로 한적한 길을 달리는 불빛도 보인다.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밤이 깊어지면 하얀 별빛 따라 멀리 멀리 공짜로 요술나라 구경 가는 시간이 된다.

대낮에 보는 천문대는 나무 위에 새집 같다. 아침잠에 일어난 산기운이 새들을 깨운다. 천문대 오솔길로 이른 등산객의 발길이 가볍다. 한동안 테니스장에 발길이 뜸한 동호인이 등산에 푹 빠져 산다고 자랑이다. 당뇨에도 좋고 근육도 생기고 뭔지는 몰라도 일하는 데 생기가 돈다고 산행을 권한다.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한국 사람의 산사랑은 여기서도 가히 놀랄 만하다. 오죽하면 새들이 집터가 무너져 내릴까 걱정이라고 한다. 하늘 밑에 산이고 나무 위에 새집처럼 커다란 천문대도 작기는 매양 똑같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한다. 철새는 바다 건너 대륙 건너 별자리 봐 가면서 수만리를 여행한다. 하늘에도 샛길이 있나 보다. 백날이 지나도 누구하나 손잡을 수도 없는 외로운 여정이다. 고생 끝에 복이라고 희망과 꿈이 숨 쉬는 유토피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의 주위를 맴돌며 사는 터줏대감 같은 텃새도 있다. 멀리 갈 이유도 높이 날아야 할 이유도 없다. 꿋꿋하게 날아가는 철새의 모습에서 삶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잠자리가 물새에게 자기도 새라고 우긴다. 날개가 있고 위로 아래로 날 수 있고 공중에서 정지할 수도 있으니 자기도 새라고 덤빈다. “나도 새다”라고 혼자서 외친다. 새가 잠자리에게 묻는다. 너는 알에서 태어나니. 그래 나도 알에서 깨어났어. 그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뼈라도 있니. 뼈는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뼈 없이도 잘 먹고 잘 산다고 자기도 새라고 까분다. 옆에 앉은 물새가 집안에 알만 남겨두고 그냥 웃고 외출한다. 맞아 너도 새야. 요즘은 제멋에 사는 세상이니까.

알은 새의 세상이다. 둥지 안에 알짜배기 형제들이 가득 차니 물새가 죽은 듯이 품는다. 날지도 먹지도 못하는 물새가 잠자리 눈에는 애처로워 보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깨지는 알속에서 생명의 환호성이 들린다. 새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잠자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 이웃에서 벌어지고 있다. 알속의 세상에서 둥지 밖의 하늘로 드높이 날아본다. 새끼 새들은 낯선 눈빛으로 옆집 잠자리에게 인사한다. 세상에는 별난 새도 많다고 고개를 갸우뚱 흔든다.

하늘 길에 하늘 집을 짓는다. 제 아무리 사람이 큰 집을 지어도 산 아래 집이고 제 아무리 재물을 퍼부어도 새 둥지만도 못한 것이 우리네 집이다. 새처럼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느 집 처마 밑이건 소나무 꼭대기 둥지라고 한들 그들은 알고 있다. 하룻밤을 머물고 갈 곳을. 두 다리 펴고 하늘을 지붕 삼고 별 빛을 친구 삼는 안식처를 찾아간다. 아래녁 불빛이 왠지 불안하다.

마음속에 둥지를 만든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뜻이다. 한 지붕 한 둥지 이야기가 잠자리 동네에 시끄럽다. 꿈길의 요술나라 같은 둥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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