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붉은 마법의 냄비

2014-12-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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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1891년 12월24일 샌프란시스코 해안. 한 척의 난파여객선이 떠밀려 왔다. 난민은 무려 1,000여 명.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불황으로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그 때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가 나섰다. 그는 영국 리버풀에 있을 때 본 ‘심슨의 솥’을 떠올렸다. 당시 심슨은 가난한 사람을 돕고자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솥에 다리를 만들어 거리로 나섰다.

그것이 자선모금함인 심슨의 솥이다. 그는 오클랜드 부둣가에 큰 솥을 내다 걸었다. 그리고 심슨의 솥처럼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 붙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솥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돈을 모아 난민들에게 따뜻한 스프를 나눠줄 수 있었다. 그것이 ‘구세군 자선냄비’의 출발이었다. 매년 어김없이 불우한 이웃을 돕고자 펼쳐지고 있는 ‘자선냄비’ 운동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은 1865년 7월2일 영국 런던에서 창설됐다.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자신의 작은 교회를 개방하여 세운 기독교의 한 교파다. 처음 내건 간판은 ‘기독교 선교관’ 사역은 거리의 부랑아를 돌보는 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노숙자들한테는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알콜 중독자들은 치료해 주었다. 날이 갈수록 확대된 사역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교회체제를 군대조직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구세군은 시작됐다. 그래서 구세군은 ‘구제하는 군대’란 뜻이다.

구세군의 기본정신은 정직, 근면, 순결, 자선이라 한다. 그들의 자선냄비 모금은 소외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사랑의 실천운동이다.

자선냄비는 종과냄비 그리고 붉은 방패 등의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은 깨우침의 상징이라 한다. 종소리는 사랑을 모르거나 알아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깨우치는 소리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웃을 돌볼 여유가 없이 사는 사람들. 이들이 종소리를 들으면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던 사랑의 불씨가 살아난다. 이웃에 관심을 갖고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그래서 종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다. 마음으로 들어야 이웃사랑을 모른 체 하는 이기심이 사라진다. 사랑하고 양보하며 이웃을 돌보는 마음은 솟아난다. 이런 것이 자선냄비의 순결함과 더할 수 없이 높은 가치이다.

냄비의 상징은 공동체의 의미라 한다. 냄비에서 끓는 국은 서로 나누어 먹기 마련이다. 1달러 지폐가 내 주머니에 있으면 내 돈이지만 자선냄비에 넣으면 ‘우리의 돈’이 된다. 그 돈은 이름 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 그래서 냄비는 더불어서 함께 사는 공동체의 상징이란 얘긴가 보다.

붉은 방패는 방어와 보호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이 실현되지만, 사탄의 나라는 미움과 욕심이 지배한다고 한다. 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소외된 이웃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붉은 방패란 의미다.

지난달 중순부터 한인사회에 등장한 구세군 자선냄비는 성탄전야인 24일까지 모금활동을 한다. 구세군 사관은 모금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자선냄비가 넘치지는 않고 오히려 식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연말 불우이웃사랑의 상징인 자선냄비가 추운날씨만큼 ‘꽁꽁’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며칠 남지 않은 모금기간에 온정의 손길이 절실할 뿐이다.

자선냄비는 연말에 어려운 불우이웃을 돕는데 필요한 모금함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액수에 상관없이 참여한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붉은 마법의 냄비’라고도 한다.

자선냄비의 사랑과 희망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한 해가 가기 전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꼭 실행으로 옮겨보자. “딸랑~딸랑, 자선냄비가 펄펄 끓어 넘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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