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골치 아픈 클래식 음악 이야기

2014-12-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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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음악 감상은 미학적, 정서적, 철학적인 충족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경험하게도 하는데 이는 음악 작품이 당대의 문화적 관습 혹은 사회적, 정서적 환경 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음악을 들으며 그 당대인들이 들었던 소리, 연주 환경 등을 상상할 수 있게 되니 이는 가히 정서적 시간여행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사실 서양음악의 악기들은 수 세기를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다 19세기에 들어서야 현재의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정착된 것이었고 18세기까지도 악기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와는 다소간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물론 각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도 현대의 것과 좀 달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듣고 있는 비발디(1678-1741)의 음악이 당시에는 조금 다른 소리로 들렸음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문제점으로 부터 출발된 20세기 중후반의 일련의 움직임은 원전 음악이라는 운동으로 발전, 이후의 음악 해석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옛 음악을 당대의 소리와 연주 방식으로 재생하자는 움직임인데, 악기 소리도 다르고 연주 ‘스타일’도 달랐을 당대의 소리를 복원해내는 것은 과연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 시대에는 녹음 기술이 있었을 턱이 없으니 확실한 비교 대상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리를 복원하는 일은 이와 같이 적잖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음악학자들은 많은 문헌과 자료 등을 통한 연구를 통하여 근사치에 가까운 소리와 스타일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나 초상화 등의 그림을 통한 연구는 Iconography라 하여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을 연구하는 작업인데 특별히 악기 등의 모형을 면밀히 연구하기도 한다.

또한 작곡자의 자필 악보를 토대로 다시금 원본 악보를 인쇄해내는 노력도 시작되었다. 이는 악보 인쇄 과정에서 editor라 불리는 연주자들의 의견이 첨삭되는 과정에서 종종 발생하는 작곡자의 초기 의도의 곡해를 피하기 위함이다. 20세기 후반부에 급속도로 확산 이와 같은 노력을 원전음악 운동, Performance Practice movement라 지칭한다.

옛 것을 현대의 공간에서 재생하는 작업이 어디 녹록한 작업이겠는가. 지난 세기의 위대한 정신을 가감없이 정직한 소리로 표현해 내고자 하는 이와 같은 분투-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는 어찌 보면 별개의 세상의 동떨어진 행위로 밖에는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생각해보라.


물질적 이익이나, 대단한 영예를 가져오지 않는 작업일지라도 누군가가 묵묵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는 세상은 아직도 조금은 희망을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닐 것인지……. 그래서 이러한 과정은 참으로 가치 있고 아름답다.

강미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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