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늙은 얼굴

2014-12-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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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철 <은퇴목사>

내일은 날씨가 무척이나 추워지려나, 어제 늦은 저녁부터 바람이 몹시도 불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궂은 날씨로 집 안에서 미루어 오던 책장을 정리하던 중, 제대로 손을 보지 않았던 사진 뭉치를 풀어 보게 되었다.

그 중에 아주 젊었을 때 찍었던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에 나의 시선이 멈추었다. 어!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젊고 잘 생긴 나의 모습의 시절이, 그러면서 지금의 나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하여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 속의 나는 50 여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그래서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고 변화하는 연륜으로 피곤에 지친 모습이 핏기 잃은 창백한 모습으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오래 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이제는 다 장성하여 출가한 딸들이 친정어머니의 생신을 맞이하여 모였다. 오랜만에 모인 딸들이 서로 누구의 손이 고운가 하고 서로 손을 내어 놓고 자랑을 하던 중 큰 딸이 자기 친정어머니의 손이 제일 곱다고 하였다. 물론 늙으신 친정어머니의 손은 여위고 주름과 굳은살이 박혀있는데 자기들을 키우기 위하여 수고와 희생으로 얼룩진 수많은 세월을 불평 없이 오히려 즐거움으로 살았던 사랑과 희생의 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자식들이 나의 깊은 주름, 일그러진 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험한 세상에서 세파에 헤어지고 얼룩진 저 얼굴이 자기 자신들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얼굴이라고 생각해 줄 것인가?

또 흘려보낸 많은 세월이란 삶의 경륜을 쌓은 세월, 삶의 경험을 통해 인격의 성숙을 이룬 세월, 그래서 이해와 인내로 내 이웃을 포용하고 어떤 형편에서도 감쌀 수 있고 훈훈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담은 얼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비쳐지는 나의 얼굴은 어떠한가?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자기의 삶의 모습과 언행이 어우러져 나이든 자신의 얼굴모습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나이든 나의 얼굴은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닌 나의 책임인 것이다.

나이든 사람은 아직 삶의 경험이 부족하고 인생의 경륜이 짧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고 경험을 나누어 줌으로써 인생의 본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인생의 경륜이 짧은 젊은이들은 나이든 인생 선배들을 존경하고 배우려고 하는 겸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 것은 한 나이든 사람의 너무 과도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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