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갑질, 이제 그만!

2014-12-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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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프라이드가 건방지게 끼어들어’ 하면서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를 앞서가던 프라이드를 막아선 뒤 벽돌로 차를 내리친 롯데그룹 부회장 아들 신모씨,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2013년 4월에는 포스코 에너지 상무인 모씨가 LA행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가면서 기내식 라면이 덜 끓었다, 짜다, 나 무시하냐 등등 여러 번 퇴짜를 놓다가 급기야 승무원 눈가를 책으로 내리쳐 공항 FBI에 체포되고 급기야 직장에서도 사퇴했다. 프라이드 재벌아들, 라면 상무에 이어 지난 5일 ‘땅콩 회항’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 한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존 에프 케네디공항에서 인천행 대한항공이 활주로로 향하던 중 갑자기 탑승구로 되돌아갔다. 일등석에 탑승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 삼아 이미 움직인 비행기를 돌아가게 해 사무장을 내려놓게 한 것.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은 미 최고 공항으로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사소한 실수가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이 비행기 승객들은 아무런 안내방송도 없이 탑승구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얼마나 불안했을까.

과연 250여명의 승객 목숨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조현아에게 있는가. 항공법과 공항 안전을 무시한 이 기막힌 처사에 뉴욕한인들이 대한항공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1969년 3월 1일 운송전문기업인 한진상사가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정부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여 창립한, 한국의 얼굴이다. 79년 뉴욕에서 45번째로 국제선 취항허가를 받아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태극기가 걸리며 3월 29일 첫 여객기가 도착했다. 첫 승객 252명과 마중 나온 한인들은 ‘드디어 우리 비행기를 타고 뉴욕과 서울을 오가는구나’하고 감격했다.

초창기에는 잦은 연착에도 불구, 우리 비행기라는 자부심으로 기다려주었고 모국 방문시 항공요금이 외국항공사보다 훨씬 비싸도 기꺼이 이용했다. 재미한인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민자들은 파랗고 빨간 태극 문양이 그려진 비행기만 봐도 눈시울이 젖을 정도로 고국을, 고향을 그리워했다.

83년 KAL기가 소련미사일에 격추되며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하자 한인사회는 규탄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유족 돕기에 나서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이렇게 미주한인들의 웃음과 눈물 속에 성장해 왔다.

그런데 ‘내 비행기 내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뭐래’ 한 조현아 재벌 3세, 전통의 태극마크를 단 국적항공사가 그녀의 한마디에 모든 원칙이 와르르 흔들렸다. 세계적인 대형할인매장 체인 월마트를 창립한 샘 월턴(1918~92)은 20세기 후반기를 대표하는 미 최고기업인이다. 그는 자식들에게 ‘남이 나를 대접하기를 바라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항상 소비자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교육시켰다. 자손들은 부친의 가르침대로 전혀 부자인 척, 잘난 척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출장 시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고 한다.

제대로 된 기내 서비스를 하는 지 알아보려면 이코노미 석에 앉아 오랜 시간 불편하게 가면서 조금 더 편한 좌석이나 공간 이용에 대해 연구 했어야 한다. 손님의 예상을 뛰어넘는 서비스는 이렇게 몸을 낮추고 직원들을 파트너로 대하는 가운데 생긴다.

이 땅콩 회항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조현아는 부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차제에 대한항공과 여러 계열사에 전문경영인 체재를 도입하기 바란다. 한국민들이 ‘대한’ 이름 쓰기 반대운동을 벌여 ‘대한항공‘이 ‘한진항공’이나 ‘땅콩항공’으로 이름이 바뀌는 굴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 그만 ‘수퍼 갑질’을 그만두어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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