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2014-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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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한국인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이중섭의 ‘황소’와 ‘소’, 박수근의 ‘빨래터’,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천경자의 ‘길례언니’, 이대원의 ‘과수원’, 김기창의 ‘군작도’, 오지호의 ‘남향집’, 이인성의 ‘해당화’, 김환기의 ‘산월’ 등이 거의 매번 10대 순위 안에 들어간다.

특히 이중섭(1916~1956)의 ‘소’ 는 한국의 근·현대화에서 가장 뛰어난 명작이다. 겨우 40년의 삶을 살면서 늘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끝내 일본인 아내 남덕과 아이들을 처가에 보내놓고 굶주림, 그리움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이중섭, 그는 정신분열증에 간염으로 적십자병원에서 외롭게 사망했다.

이중섭은 한국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미술재료를 구하기 힘들자 남들이 버린 담뱃갑 은박지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뾰족한 물건으로 스케치를 하면 생기는 은박지의 오목한 부분을 칠한 그림에는 열악한 환경과 질병을 이겨낸 화가의 불굴의 혼이 담겨있다.


요즘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는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컷 아웃츠(Cut-Outs) ‘전이 열리고 있다. 티켓을 사려는 사람들이 개장시간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 서있다.

이번 전시회는 드로잉, 판화, 조각 작품이 아닌 마티스가 말년에 색종이를 오려서 핀으로, 풀로 이어붙인 100여점의 작품과 마티스의 작업 장면을 찍은 비디오가 관객을 만난다. 학창시절 공작시간이 생각날 만큼 종이를 이리저리 오려붙이고 조각조각 이어붙인 자국이 적나라하면서도 재미있다.
영상에 등장한 머리가 하얗고 단정하게 생긴 노인, 대작가 마티스다. 검버섯이 드문드문 난 손에 가위를 쥐고 색종이를 해초 모양으로 오린 다음 여자 조수에게 건넨다. 마티스가 긴 막대기로 벽에 붙은 캔버스에 자리를 짚어주면 조수는 색종이를 위로 아래로 붙여나가는데 색도 형체도 단순하지만 화면은 점점 살아올라 청순하고도 명랑한 생명력을 얻는다.

마티스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뜻밖의 기회였다고 한다. 법률가가 되려던 마티스는 21세때 맹장염에 합병증까지 겹쳐서 병원에 입원, 1년간의 요양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심심해하는 아들을 위해 그림도구를 사다주었고 아들은 붓을 들고 물감을 칠하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한다. 이렇게 마티스는 법률가에서 화가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의 두 번째 변화는 일흔이 넘어 결장암 수술을 한 후였다. 상처가 감염되는 바람에 탈장까지 생긴 마티스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13년간 침대 신세를 졌는데 더 이상 이젤 앞에 앉을 수도, 손떨림으로 붓을 쥘 수도 없었다. 화가로서 큰 위기를 맞았지만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침대에 누운 채 가위로 색종이를 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티스뿐만 아니라 신체가 병들면 다른 방법으로 길을 찾은 화가들이 제법 있다.
심각한 관절염 환자이던 피에르 오그스트 르누아르는 날이 차거나 비오는 날이면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빛을 이용한 작품을 수없이 남겼다. 무용수와 경주마를 잘 그렸던 에드가 드가는 말년에 지병으로 눈이 멀자 조각으로 방향을 바꿨다. 클로드 모네는 빛과 기후에 따라 변하는 정원을 수없이 그리면서 약해진 시력이 실명을 가져왔지만 86세로 사망하기까지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고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장애를 평생 안고 산 프리다 칼로는 침대에서 그림을 그렸다. 자신의 고통을 그린 강렬한 인상의 그림은 칼로를 멕시코 최고 여류화가가 되게 했다. 물론 정신질환으로 받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빈센트 반 고흐는 말할 것도 없다.

누구든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 연륜이 쌓일수록 더욱 깊이 있는 작품을 많이 남기면 더할 바 없겠지만 건강은 언제 어느 때 무너질지 모른다. 찾아든 질병을 삶의 에너지로 만든 그들, 신체적 변화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 더욱 강한 의지를 갖게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옛 속담이 떠오른다. 요즘은 이가 없으면 임플란트가 있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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