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열등의식

2014-11-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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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홍 (목사/ 해외기독문학협회 회장)
사람에겐 누구나 열등의식(complex)이 있다. 그 열등의식을 넘을 수만 있다면 더 높은 단계에 들어설 수 있다. 필자도 일생을 살면서 몇 가지 열등의식들이 있었다.
첫 번째 학력이다. 초등 학교 때 6학년 담임선생님이 “수십 년 교편생활 하던 중 기억에 남는 학생은 너밖에 없다”고 하시던 걸 보면 그런대로 잘 나간 편이었다. 그런데 다들 가는 중학교에 돈이 없어 못가고 집에서 막내동생을 보며 빈둥거려야 했다.

그러다가 동생을 시장에서 구멍가게 하는 어머니에게 내맡기고 바구니 과일 장사로 입학금을 마련해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준비 없이 고려대와 예일대학원을 들어가려다 낙방했다. 열등의식에 시달리다 그 한을 풀기 위해 질주하여 대학은 물론 프린스턴 대학원까지 갔다.

두 번째 명예다. 대학 때 장교로 가기 위해 신청을 했는데 문교부의 서류 누락으로 졸병으로 가게 되었다. 졸병 때 당한 고생과 수모가 가슴에 늘 응어리가 있었다. 식사 당번 때 한 대위에게 인간으로 받지 못할 대접을 받았던 것은 오랜 상처로 남았다. 제대 후에 시간이 지나 예비역 군목이 되었다. 어느 날 군부대에 인격 교육 강연 차 갔는데 그곳에서 바로 응어리를 줬던 그 장교를 만났다. 그가 바로 나를 예비군 졸병에서 예비군 군목을 만들어 준 촉진제인 셈이었다.

세 번째 돈이다. 큰 누님이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늦둥이 아들이 기어 다니며 오래된 카펫 위에 음식이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것을 보고 남의 집에 사는 것이 어려우니 조그만 집이라도 하나 사라고 한국에 들어가 돈을 보내주셨다.


그러나 타주(N.C)에 가서 아내가 아이스크림, 주얼리 가게를 하다가 다 날려 돈이 없는 상황이 열등의식으로 변했다. 그 바람에 하나님을 날마다 더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다.

네 번째 성취욕이다. 은퇴를 하고 시와 소설작가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12년 전 한국의 한 문단에서 시인으로 등단되었고 다른 문단에서 상도 받았다. 그런데 최근 고은(高銀) 시인을 생각하며 열등의식이 살살 고개를 들었다.

누구는 노벨상 후보까지 오르는데 넌 뭐냐? 고향(군산)도 같고, 책가방 끈도 비슷한데... 그러면서도 한편 그가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감옥에 있었을 때 넌 뭘 하고 있었느냐? 그의 작품들 하나하나가 역경에서 진주알처럼 이루어진 것 아니겠는가? 그는 일생동안 작품을 썼고 넌 작품 활동도 늦게 시작했고... 라고 자신에게 힐책해 본다.

그 와중에 자리 잡는 것이 있다. 목회 시절 수없이 “인간은 유일(Unique)한 존재이며 누구와도 비교하면 안 된다. 비교는 바로 죄(罪)다.” 외쳐댔던 설교가 이제야 자기 것이 되어 간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본다면 그 사람은 알피니스트(Al-pin-ist)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서핑(Surfing) 하는 자가 파도를 탈 때처럼 정말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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