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종차별과 폭동이 없는 나라

2014-11-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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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계 어디를 가 보아도 미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드문 것 같다. 살기 좋다고 하는 유럽도 물 한 컵마다 돈을 지불해야 하고 도로만 봐도 그렇게 좁을 수가 없다. 미국은? 어느 식당에서도 물마시고 돈을 지불하는 곳은 아직 없다. 도로는 8차선, 10차선으로 훤히 뚫려 있고 마켓에 가 보면 먹을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런 미국이 지금 인종차별과 폭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과 소수민족의 불만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아메리카의 혹 같은 존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을 일으킨 백인우세의 나라에서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의 후손과 이민으로 들어온 소수민족들 열세는 백인들을 넘을 수 없는 불가항력일까.


<로드니 킹 사건>이라 불리는 L.A.폭동사건도 인종차별 선에서 시작됐다. 1992년 4월29일 시작돼 5월4일까지 이어진 폭동은 차별을 받고 있는 한인들이 오히려 인종차별을 빌미로 폭동을 일으킨 흑인들에게 당한 꼴이 되었다. 이유는, 경찰이 폭도들에게 백인동네 침입은 차단했고 한인 타운엔 길을 오픈했기 때문이다.

폭동이 일어난 일주일동안 L.A.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사건의 발단은 백인경관에 대한 인종차별적 재판의 결과가 원인이 됐다. 1991년 3월3일 LA경찰국소속 백인경찰관 4명이 과속으로 운전하던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린 흑인 로드니 킹이 항거하자 경찰은 그를 경찰봉, 주먹, 발로 차고 그대로 경찰서에 끌고 간다.

이 때 인근 주민들이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방송사에 제보했고 뉴스로 방영된다. 3월15일, 킹을 구타한 경찰관 4명이 기소된다. 1992년 2월5일 재판이 시작돼 심의된 결과 4월29일의 판결에서 3명은 무죄, 1명은 재심사로 선고된다. 이에 분노한 LA거주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그 울분을 폭동으로 풀기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인종차별적 원인이 된 폭동이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시작됐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불이 붙고 있다. 11월24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백인9명, 흑인3명)이 흑인 마이클 브라운(18)을 총으로 사살한 백인 경관 대런 윌슨(28)에게 정당방위로 총을 쏜 쪽으로 불기소결정을 내린 것이 이유다.

사건은 지난 8월9일 편의점에 들렀다 귀가하는 브라운과 윌슨 경관의 몸싸움이 시작이다. 항거하는 브라운에게 윌슨은 6발의 총을 발사했고 그 자리에서 브라운은 절명했다. 이후 이 사건으로 흑인들의 폭동이 시작돼 연방정부의 법무장관이 경질되는 등 소요가 줄어들다가 이번 대배심의 결정으로 다시 폭동이 시작된 거다.

폭동은 퍼거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주전체로 번지고 있다. 뉴욕도 지난 7월 경찰의 목조르기로 사망한 에릭 가너의 죽음 이후 경찰의 인종차별적 과잉진압이 문제시돼 왔는데 브라운의 대배심결과는 1천여명의 흑인과 인권단체의 백인들을 뉴욕중심의 맨하탄 거리로 나오게 해 소요를 하게 하는 동기가 돼버렸다.

그들은 “정의 없이 평화 없다(No Justice, No Peace”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폭동은 필라델피아, 워싱턴DC, 시애틀, 애틀란타, 볼티모어, 휴스턴, 달라스, LA등 미국 전체로 번질 기세다. 소요와 시위로 끝나면 괜찮다. 그러나 폭도로 변하면 죄 없는 서민들이 또 당한다. 폭동은 금기다.

이런 민감한 차제에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흑인 브라운의 피격사건을 두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23일 MSMBC방송에서 “살해된 흑인 93%는 같은 흑인의 공격으로 숨졌다. 왜 흑인이 흑인을 죽이는 것에는 시위하지 않는가”라고 했다. 이에 대한 방송진행자 마이클 에릭 다이슨의 말이다.

“흑인이 흑인을 죽이면 교도소에 가지만 백인 경관이 흑인을 죽이면 교도소에 가지 않는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 인종차별은 금물(禁物)이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기에 그렇다. 또한 폭력과 폭동도 금물(禁物)이다. 인종차별도 합리적으로 풀어야만 한다. 인종차별과 폭동이 없다면 미국은 더더욱 살기 좋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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