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에 보이는 거룩은 가식… 낮은 곳 바라봐야”

2014-11-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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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거룩은 가식… 낮은 곳 바라봐야”

김 스데반 신부가 성찬식을 끝내고 교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눈에 보이는 거룩은 가식… 낮은 곳 바라봐야”

김 스데반 신부

■ ‘41년 목회’내달 은퇴 앞둔 김 스테반 성공회 신부

인생의 공간을 하나씩 채우며 시간은 흐른다. 지나 보면 빈틈이 수두룩하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꽃도 피고 열매가 맺는다. 아쉬움과 보람이 교차되는 그 순간 지나온 여정의 무게가 결정된다.

장장 41년에 걸친 목회 일선을 마치는 심정에서 착잡함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분투하며, 때로는 울었고 어느 때는 웃음을 터뜨렸던 시절이었다.


김 스테반 성공회 신부는 자신의 사역 성적표를 감사와 자족으로 받아들였다. 후회와 안타까움이 배어드는 구석이 왜 없겠느냐마는 주님의 광대한 섭리 안에서 나름 힘껏 달려온 길이었다.

김 신부는 성공회 로스앤젤레스(LA) 교구 성바울 대성당에서 한국어 사역을 맡고 있다. 성바울 대성당은 LA 교구 주교가 근무하는 본부 성당이다. 그는 남가주 지역에서 사목에 전담하는 유일한 한인 신부다. 그리고 12월을 끝으로 은퇴한다.

남가주에는 성바울 대성당 외에도 오렌지카운티 부활의 교제 성당과 한인타운 성제임스 성당에서 한인들이 미사를 드린다. 부활의 교제 성당은 현재 담임신부가 부재중이고, 성제임스 성당의 고애단 신부는 학교 원목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신부는 약관 26세에 서품을 받고 사목의 길에 들어섰다. 할리웃에 있던 성니콜라스 한인성당에 안애단 신부의 뒤를 이어 부임하며 이민목회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16년, 미국에서 보낸 세월이 25년이다.

“한국에 있을 때 대도시 큰 성당 주임신부로 있다가 주교의 눈밖에 나 시골성당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때 제가 내건 부임 조건중의 하나가 청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새벽기도는 못한다고 했죠. 잠을 자야 한다고요. 12명이던 교인이 2년 만에 10배가 늘었고 경상도에서 당시가장 큰 성당을 건축했어요. 젊은 열정과 오기로 일하던 시절이죠.”

김 신부를 만나면 누구나 5분안에 웃음을 터뜨린다. 유머감각이 워낙 뛰어난데다, 권위나 체면을 내세우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민감한 내용에도 거침이 없다.

외모만큼이나 자상하고 정이 넘친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다.


“눈에 보이는 거룩은 가식이에요. 내 몸을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는 게 거룩이죠. 겉모습이나 말투가 상스러워도 세상이 필요로 하는 곳에 적절하게 쓰인다면 그게 거룩 아니겠어요? 고귀한 곳이나 미천한 곳이나 하느님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봐요.”

김 신부는 ‘직립 거룩’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했다. 90도로 몸을 숙이며 인사만 잘 할 게 아니라, 목을 꼿꼿이 곧추 세우고도 자신의 시선은 낮은 곳을 향하는 것이 진짜 겸손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목회 역사는 ‘픽업의 일생’이었다며 웃었다. 한국에서도 봉고차를 몰고 성도를 태우고 다니다 이민교회에서는 25년내내 주일마다 교인 픽업을 빼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중에도 불려나가기 십상이다.

이런 그의 모습에 미국 신부와교인들은 감탄한다. 공용 차량도 아니고 자기 자동차로 20년 넘게 성도를 태우고 다니는 김 신부를 보고 처음에는 냉랭하던 백인 주교가 열혈 팬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지는 못했어요. 한국에선 일할 만하면 주교가 전출시켰고, 미국에선 성도가 분열하기도 했죠. 아쉽지만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100달러짜리만 좋아하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지도 않죠. 큰 교회라고 상 주시는 분이 아니니까요.”

“지금도 한국에선 신부 사례비가 100만원밖에 안 돼요. 그런데도 주교는 해외 여행 다니고 부유하게 살면서 ‘희생하라’고만 합니다.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뭐가 무서워서 떨어요. 예수님은 위선을 나무라셨어요. 목회자들도 그래야 마땅합니다.”

LA 교구 부르노 주교는 지난달 예고도 없이 김 신부를 교구 자문위원으로 임명했다. 백인 일색인자리에 그는 본의 아니게 상석에앉게 됐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주고, 밥이 필요한 사람에게 밥을 줘야죠. 그래야 복음이 살아요. 말로만 축복하고 기도하겠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가식이나 억지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 자체가 영성이에요.”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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