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합리적 의심

2014-11-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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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 <사회1팀 기자>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배가 고프다며 승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한 얼굴의 한 여성승객이 친절한 목소리로 바나나를 권했다. 그런데 이 남성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지나쳤다. 배가 고픈 게 아니었다. ‘다른 곳’에 사용할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남성에게 바나나를 건네려 했던 여성도, 실제 돈을 건넨 주변사람은 모두 이런 의심을 마음속에 품었다. 내 돈이 그 목적에 맞게, 쓰임새에 알맞게 쓰이는지 확인하는 건 이들에겐 일종의 권리와도 같기 때문에 이 의심은 합리적이다.
얼마 전 뉴욕한인노인상조회에 작은 내홍이 일었다. 100여명의 상조회원들이 투명한 운영을 요구하며 총회를 요청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6,400명의 회원을 보유한 상조회는 1996년 정관개정을 통해 총회 대신 10여명의 이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사회로 운영 방침을 변경했다. 그 후로 18년간 별 탈은 없었다. 그런데 몇몇 회원이 2013년도 운영비 지출내역을 보곤 의문을 품게 됐다. 문제는 그 의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사회라는 높은 장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이들의 의심에 상조회 집행부측은 “말도 안된다”며 발끈했다. 상조회의 임형빈 초대회장은 언론에 장문의 글까지 기고해 상조회는 ‘건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명운동을 벌인 사람들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깎아내려 버렸다.

노인상조회는 현재 회원이 6,400명에 달하는 큰 조직이다. 더구나 회원들이 납부한 상조금이 수천만 달러에 이르면서 마치 유사 금융기관 같은 곳으로 변모한 지 오래다. 이 같은 단체가 회원들이 의문점을 갖는다고 ‘문제 회원’이라고 폄훼하는 게 옳은 모습일까.

오히려 기자는 이들의 문제 제기가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2010년과 문제가 되고 있는 2013년 운영비 지출내역을 비교해보면 의심할 만한 항목이 여러군데에서 발견된다. 임형빈 초대회장은 이사들의 톨비로 지급됐다곤 했지만 2010년 1,400달러에 불과하던 교통비는 6배가 늘어난 8,488달러가 됐다. 특혜자 면제비는 1,120달러에서 4,420달러, 인쇄비는 760달러에서 3,017달러로 높아졌고, 전에 없던 용역비 1,273달러, 퇴직위로 4,420달러는 새롭게 생겨났다.

비용이 갑자기 왜 늘어났는지 회비를 납부하고 있는 회원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투명하다면 회계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문제없다’, ‘괜찮다’, ‘괜히 흔들지 마라’,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대응 방식은 잘못됐다. 전체 회원 6,400명 중 단 한명의 회원이라도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면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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