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이 우선이다

2014-11-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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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느끼며

7일부터 뉴욕시 일반 도로의 차량 제한 속도가 시속 30마일에서 25마일로 늦춰졌다. 지난 주말에 퀸즈 플러싱에 나갔다가 운전자들이 어찌나 느릿느릿 가는지 앞차가 길을 찾고 있나, 골목에 경찰차가 숨어있나 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차량 제한속도가 바뀌었고 플러싱 109 경찰서가 당분간 25마일 속도 초과 차량에 대한 단속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의 비전 제로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달 뉴욕시의회가 승인한 이후 이날 본격 시행됐다고 한다.

퀸즈 지역에서 사람들이 속도위반 티켓을 자주 받는 곳이 있다. 플러싱 메인 스트릿에서 메츠 홈구장인 시티필드를 왼쪽으로 끼고 노던 대로를 올라가는 시점에 속도 제한 표식이 잘 안보이고 차량도 별로 없어 저절로 속도가 붙게 된다. 다른 차를 따라 속도를 좀 높혔다 하면 어느새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경찰차가 쫒아오거나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차를 갓길에 멈추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본인도 이곳에서 과속 티켓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 도로를 자주 가는 사람들은 경찰이 깜박이등을 켠 차량 운전자에게 위반 티켓을 주는 광경을 본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 속도위반 티켓이라는 것이 티켓과 함께 벌점이 부과되니 당하면 참으로 곤혹스럽다. 때로 변호사까지 고용하여 티켓을 무효화 시키고자 1년이 걸리기도 한다. 교통 범칙금에 변호사비에, 깜빡 엑셀을 힘주어 밟았다가 거금이 날아가는 것이다. 기분도 또 얼마나 상하는 가.

시교통국은 7일 당일 80여개의 제한 속도 표지판을 교체했고 앞으로 3,000여개의 표지판을 모두 바꿀 계획이라 한다. 뉴욕시의 시내 주행 제한 속도는 1965년부터 지난 6일까지 시속 30마일이었다. 약 50년 만에 주행 제한속도 관련 조례가 개정됐다. 20여년 전 처음 프린스턴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사람들이 빨간 불 이라도 일단 도로에 발을 디디면 모든 차량이 일제히 멈춰 서서 얌전히 기다려주는 것을 보았었다.

모든 차량들이 행인들이 인도에 들어설 때까지 단 한번 빵빵거리지도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것을 보고 대학가라 그런지 동네가 참으로 여유가 있네 했었다. 그런데 워낙 바쁜 뉴욕시에 살다보니 빨간불에 사람들이 건너가면 차량들이 빵빵 거리고 난리가 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복잡한 맨하탄에서는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 횡단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해 보행 중 사망자가 291명이었다고 한다. 뉴욕시에서 발생한 연간 살인사건 피해자가 333명이라는데 이것과 비교하면 보행사망자 비율이 꽤 높다. 보행자 사망사고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실시된 이 법은 ‘무단횡단자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조례에서 ‘사람이 우선이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동안 ‘사람이 우선이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공권력에 맞장 뜨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며, 성공 이전에, 돈과 기술 이전에, 핵발전소와 송전탑 건설 이전에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국가가 정한 법과 규칙에 시민이 협조해야 한다. 빨간 손바닥 사인에는 멈춰 서야 하고 하얀 보행 사인에 건너가야 한다. 이 간단한 원칙을 지켜서 선량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먼저여야 한다. 빨간 사인이 켜져 있건만 급히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하고 전화 통화하며 제 볼일 다 보느라 천천히 건너가는 사람도 있다.
그 앞에 멈춰선 차량 안에는 시간에 쫒기며 생계를 꾸려가는 택시기사, 몸이 아파서 병원으로 가거나 출근시간에 쫒기는 사람, 중요한 면접이나 상담을 하러가는 비즈니스맨이 타고 있기도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일을 지체시키고 방해해서까지 ‘사람이 먼저다’를 외치는 것은 비양심적이다. 나만 바쁜 세상이 아니다.

앞으로 뉴욕에서 운전하려면 인내심, 양보심도 더욱 키워야 할 것이고 보행자로 길을 건널 때는 지킬 것은 지키자. 그것이 진정한 ‘사람이 우선’인 세상, 사람이 중심인 세상이다.

민병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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