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나들이와 옴살”

2014-11-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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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논설위원)


사마천의 저서 사기의 ‘계명우기’편을 보면 친구를 적우(賊友), 일우(?友), 밀우(密友), 외우(畏友) 등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적우는 도적이나 다름없는 친구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근심거리가 있으면 서로 미루며 나쁜 일이 있으면 책임을 떠넘기는 기회주의 적인 사이라 한다.

일우는 사사로이 친근한 친구로서, 좋은 일과 즐겁게 노는 일에만 잘 어울리는 관계다. 밀우는 비밀이나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힘들 때 서로 돕고 늘 함께할 수 있는 친밀한 친구다. 외우는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서로 경외하는 친구로, 존경하면서 장점을 배우고 허물을 말해주면서 잘못을 바로 잡아주고 큰 의리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최고 경지에 이른 사귐이다.


이 같은 유형은 단지 친구사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고 인연을 맺는 수많은 사람관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맺은 사람관계 중에도 적우, 일우, 밀우, 외우 등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그 같은 네 가지 유형 가운데 어떤 모습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다시금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친구가 SNS 문자서비스로 보내 준 좋은 글에는 친구를 ‘꽃, 저울, 산과 땅’에 비유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었다.

꽃과 같은 친구란?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가 바로 꽃과 같은 친구란다. 저울과 같은 친구는 저울이 무게에 따라 이쪽이나 저쪽으로 기울듯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그런 친구이다.

산과 같은 친구란?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주듯이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것처럼, 그 같은 사이의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란 것이다.

땅과 같은 친구는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듯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그런 친구라 한다.

이 같은 친구들의 유형이야말로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관계와 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의 주변에도 꽃과 저울 같이 사람을 사귀고 산과 땅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꽃과 거울 같은 사람보다는 산과 땅과 같은 사람을 곁에 많이 두기를 바라고, 산과 땅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며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 관계를 일컫는 순우리말로 ‘풋낯, 자치동갑, 너나들이, 옴살’ 같은 것이 있다. ‘풋낯’은 서로가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로, 마주치면 눈인사만 하며 알고 지내는 사이를 뜻한다. ‘자치동갑’은 나이 차가 조금 나지만 서로 동갑처럼 지내는 사이다. 50년 대에 태어난 원숭이, 닭, 개, 돼지 띠 등의 한인들이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자치동갑이다. ‘너나들이’는 서로 ‘너’, ‘나’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며 ‘옴살’은 한 몸같이 친하고 가까운 사이를 뜻하는 표현이다.

사람 사귐은 처음엔 풋낯으로 만나지만 알고 지내다 보면 나이를 떠나 자치동갑이 될 수도 있고, 자주 만나 정을 쌓다보면 허물없는 너나들이의 친구가 되고 서로가 정을 주고받다 보면 한 몸 같은 옴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삶이란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고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적우, 일우, 밀우, 외우’가, ‘꽃, 저울, 산, 땅과 같은 친구’와 ‘자치동갑, 너나들이와 옴살’ 등이 있을 게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금 나는 그들 가운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곁에는 어떤 이들이 더 많은지를 떠 올리게 한다.

쌀쌀한 늦가을, ‘너나들이’나 ‘옴살’이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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