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의 어린이

2014-11-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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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 4일 미 전역에서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중간선거가 끝났으니 201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차기 대권경쟁이 본격화 되며 내년 초에는 주요후보들의 대선 출마가 있을 것이다.이번에 뉴욕주 선거구 재조정위원회 구성절차 개정을 위한 주민발의안, 주의회 법안 발의 전산화, 스마트 학교 채권발행안 등 뉴욕주 3개 주민발의안이 모두 통과됐다.

4일 아침 등교하기 전 투표소를 찾은 대학원생 딸은 이 중 세 번째인 스마트 학교 채권발행안에 대해 말했다. 어린이들에게 공평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자 교실내 기술 및 고속 인터넷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하고 최첨단 스마트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 최대 미화 20억달러에 상당하는 주정부 채권을 승인하냐는 물음에 당연히 찬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세상 많이 변했네, 자꾸 변하네’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 미국 건국 초기에는 ‘어린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아이들은 동생을 보살피거나 농장에서 일했다.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광산이나 직물 공장, 통조림 공장, 길거리 좌판에서 일을 했다.

“발명가 엘리 휘트니는 예일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16세에 못 공장을 열었고 소설 ‘모비딕’을 쓴 작가 허먼 멜빌은 삼촌의 은행에서 직원으로, 모자가게 점원으로, 교사로, 농장 노동자로, 포경선 사환으로 일하고자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웠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스무살 안짝의 나이에서 일어났다. 조지 워싱턴은 17세에 컬페퍼 카운티의 공식 감정원이 되었고 20세에는 군대에서 정식으로 소령 임관을 받았다. 토마스 제퍼슨은 14살에 부모를 여의고 16세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컬럼비아 대학 스티븐 민츠 교수는 위의 내용을 소개하며 ‘18세기 중엽은 야망과 재능을 지닌 10대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 발자취를 남길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최근의 사태를 “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이를 더욱 소심하고 나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가장 소년소녀가 많았던 이 시기에는 평균수명이 짧아 부모가 없거나 편부편모 슬하가 많았을 것이다. 부모들이 오래 살게 되면서 점차 자기 아이들을 책임지고 보호하려 했다.
연방정부는 1974년 부모에 의해 보호받고 양육되며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아동복지법을 발표했다. 1900년대에 들어서 아동 노동 금지 법안이 발의되고 이런 법안들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12학년까지 의무교육 제도도 시행되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겨우 50~60년 사이에 이렇게 변한 것이다.

툭히 한국인들에게도 낯익은 육아서적으로, 1946년 벤자민 스포크 박사가 출간한 ‘육아상식’은 수백만의 부모들에게 인기리에 읽혔다. 과거 엄격하게 키우던 양육 방식이 이해심을 바탕으로 한 부모의 관용적 태도로 바꾸게 만들었다. 가족들은 저녁이면 거실에 모여 게임을 하고 TV를 함께 보았고 주말이면 야외 피크닉을 즐기며 새로운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했다.

오늘날 미국의 공교육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토마스 제퍼슨이다. 제퍼슨은 자신이 국무장관, 부통령, 대통령이 될 때까지 계속 공립학교 설립계획을 추진하며 공교육이 민주주의의 필수라고 역설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지도자를 고른다. 이는 읽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육의 기초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미국에 어린이날은 없다. 청교도 신자들이 5월1일, 개신교 신자들이 6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린이를 위한 예배를 드릴 뿐이다. 아침에 스마트 학교채권 발행안 찬성의지를 극구 밝힌 딸을 위해 저녁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혹여 공부에 방해될 까 거실 TV 소리를 낮추고 때로 방안에서 헤드폰을 끼고 아이패드로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가 상전이다’ 한다. 그래도 아이가 맛있게 먹고 난 빈 그릇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니, 이런 게 ‘엄마의 기쁨’ 인가, ‘매일이 어린이날’인 것을 저는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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